
[더구루=정예린 기자]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소재 기업 '케이씨텍'이 미국에 현지 사무소를 설립하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다. 인텔과 글로벌파운드리 등 미국 주요 반도체 고객사를 타깃으로 현지 대응력을 끌어올리는 한편, 장비와 소재 양축 사업 간 시너지를 기반으로 해외 사업 확장을 본격화할 방침이다.
6일 싱가포르 경제매체 '더월드폴리오(The Worldfolio)'에 따르면 양호근 케이씨텍 대표이사는 최근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슬러리 사업 확장 및 강화를 위해 미국에 현지 사무소를 개설할 계획"이라며 "글로벌파운드리, 인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등 주요 글로벌 반도체 고객사에 제품을 공급 중이며, 미국 현지 거점을 통해 이들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 사무실 설립 장소로 오리건주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으며, 이는 인텔 사업장과 가깝기 때문"이라며 "올해 말까지 오리건에 사무실을 개소하고 현지에서 샘플 테스트, 고객 검증, 제품 배포가 즉시 가능한 시스템을 갖출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거점 신설은 지정학적 리스크 대응과 고객 다변화 전략의 일환이다. 기존에는 중국법인을 중심으로 글로벌 고객을 대응해왔으나, 미·중 갈등 장기화와 주요 고객사들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따라 미국 내 현지 대응 역량 확보가 불가피해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인텔, 글로벌파운드리 등 미국 고객사들이 소재·장비의 안정적 현지 공급을 점차 중시하고 있는 것 또한 현지 법인 설립을 결정하게 된 배경으로 풀이된다.
양 대표는 "미국에 새로운 지사를 설립하는 것은 글로벌 사업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한국에서 제공하는 것과 동일한 품질과 대응력을 현지에서도 구현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재 케이씨텍의 미국 시장 매출 비중은 전체에서 3.4% 수준이다. 올 1분기 기준 전체 매출 776억원 중 미국 매출은 약 26억원으로, 중국(23%)에 비하면 아직 낮은 수준이다. 다만 미국 현지 거점 설립을 계기로 매출이 늘어나며 점유율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장비 사업에서도 글로벌 진출이 본격화되고 있다. 케이씨텍은 자체 개발한 차세대 화학적기계연마(CMP) 장비 '벤투스(Ventus)' 시스템을 앞세워 미국·일본 고객사들과의 협력을 추진 중이다. 이 장비는 기존 대비 생산성을 20% 향상시켰으며, 최대 12개의 세척 챔버를 갖춘 모듈형 설계를 통해 고객 맞춤형 구성이 가능하다.
케이씨텍은 미국 외에도 일본 등 글로벌 반도체 밸류체인이 집적된 아시아 거점에 대한 투자도 검토하고 있다. 양 대표는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본사는 보통 미국 내에 있지만, 제조와 엔지니어링은 대만,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 전역에 분산돼 있다"며 "이들 지역은 케이씨텍의 글로벌 확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회"라고 설명했다.
케이씨텍은 1995년 설립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장비·소재를 공급해온 국내 중견 장비 기업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등을 주요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으며, 반도체 핵심 공정인 CMP 장비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개발·양산 중이다. CMP 장비는 웨이퍼의 표면을 정밀하게 평탄화해 회로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 장비로, 케이씨텍은 이외에도 세정장비(WCS), 디스플레이용 웨트 스테이션, CMP용 슬러리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해왔다.
작년부터는 CMP 장비를 넘어 소재 부문까지 본격 진출하면서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력 소재인 세리아(Ceria) 기반 CMP 슬러리는 자체 독자 기술로 개발됐으며, 디싱 제어, 제거율, 스크래치 최소화 성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 외에도 텅스텐, 폴리실리콘용 슬러리를 공급 중이며, 향후 구리 기반 첨단 포뮬레이션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양 대표는 "CMP 슬러리와 장비는 미래 성장을 이끄는 핵심 제품군"이라며 "이 두 분야를 함께 수행함으로써 고객 맞춤형 고성능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시너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실제 케이씨텍의 전체 매출에서 장비가 약 60%, 소재가 약 40%를 차지한다. 이 중 소재 부문 매출의 약 30%는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게 양 대표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