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오소영 기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반도체 자립에 대한 야심을 내비치며 삼성과 대만 TSMC에 구애했다. 첨단 공정인 2나노미터(㎚·10억분의 1m) 기반 반도체 제조시설 확보에도 관심을 보였다. 다만 유럽 수요와 투자 여건을 고려할 때 실제 제조 공장이 설립될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16일 미국 정보기술(IT) 매체 'Wccftech' 등 외신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비바테크놀로지 2025'에서 "프랑스에 투자하도록 삼성과 TSMC를 설득하고 싶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더 많은 칩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형 공정인 10나노부터 미세 공정인 2나노 기반 칩 생산에 관심을 보이며 가장 진보된 칩을 프랑스에서 생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유럽은 코로나19 이후 반도체 부족을 겪으며 기술 자립에 본격 나섰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022년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430억 유로(약 67조원)를 투자하는 EU 반도체법(Chips Act)에 합의했다. 2030년까지 반도체 생산 시장점유율을 20%로 키운다는 목표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유럽은 전 세계 반도체 수요 중 약 20%를 차지해 생산(8%)과 격차가 크다. 자국 제조 역량을 강화해 이 격차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반도체법이 통과된 후 인텔과 글로벌파운드리 등 주요 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졌다. 인텔은 지난 2023년 6월 독일에 300억 유로(약 50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으며 글로벌파운드리와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프랑스에 약 40억 유로(약 6조원)를 들여 태양광용 반도체 웨이퍼(300㎜) 공장 건설에 나섰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세계적인 항공우주방위산업 업체 탈레스와 대만 폭스콘, 커넥터 전문업체 라디알의 신규 투자 유치도 언급했다. 이들은 지난달 유럽에서 첫 '팬아웃 웨이퍼 레벨 패키징(FOWLP) 기반 반도체 후공정(OSAT)' 공장 건설을 위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투자비는 약 2억5000만 유로(약 4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023년 6월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반도체 사업을 함께 추진하자고 제안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개별 면담을 갖고 반도체 협력을 논의했다. 작년에는 이 회장이 마크롱 대통령이 초청한 글로벌 기업 오찬 자리에 참석해 이목을 모았었다.
마크롱 대통령의 구애가 지속되고 있지만 투자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TSMC는 작년 8월 독일 드레스덴에 신공장을 착공했으나 가동 단계에 진입하는 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의 미세 공정 수요도 높지 않다. 자동차에 쓰이는 성숙 공정 기반의 칩 수요가 크며 이를 충족하기 위한 시설은 충분하다. TSMC가 독일 신공장에서 28·22나노 상보형금속산화 반도체(CMOS) 기술과 16/12㎚ 핀펫(FinFET) 공정을 도입한 이유다.
더구나 삼성은 업황에 대응해 올해 파운드리 투자를 줄일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파운드리는 올해 설비투자 예산을 전년 대비 50% 줄인 5조원으로 책정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