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이연춘 기자] 올 들어서도 미국 상장 기업들이 집단 소송 열풍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가 하락에 따른 투자 손해를 보전하라는 주주들의 무분별한 집단 소송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반면 해외와 달리 국내 상장사는 주가 폭락에도 집단소송 제도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일각에선 주가가 수년간 폭락한 국내 신규 상장사들이 미국 투자 소송 문화에 영향을 받을 경우 지금보다 훨씬 많은 집단소송에 직면할 것으로 내다봤다.
4일 미국 보험 컨설팅사 우드러프 소이어(Woodruff Sawyer)에 따르면 지난 2020~2022년간 미국 증시에 상장 직후 1년 안에 주가가 하락했다는 이유로 집단 증권 소송을 당한 신규 상장사는 83개사에 달했다. 매해 전체 집단 증권 소송 가운데 신규 상장사가 소송 당하는 비중은 2020년 14%에서 지난해 21%로 올랐다.
우드러프 소이어는 "신규 상장사는 집단소송의 핵심 타깃으로, 상장 이후 주가가 떨어진 기업들이 통상 1년 안에 겪는 문제"라며 "테크주는 다른 업종보다 변동성이 있어 자연스럽게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케빈 라크록스(Lacroix) 보험 중개사 알티스페셜티(RT Specialty) 부사장은 "역사적으로 매년 IPO 기업 가운데 소송을 당한 기업 수는 20%에 이르고 있으며, 특히 상장 후 공모가보다 20% 이상 하락한 기업들의 소송 제기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또 IPO기업들이 '현금 많은 기업'으로 분류돼 불법이나 기만과 무관하게 소송 타깃으로 삼는 경향이 많다는 업계 관측도 있다.
하지만 집단소송의 절반 이상은 재판 전에 기각되고 있다.
스탠퍼드대는 1996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미국 상장기업들에 대한 집단 증권소송은 6428건이었고 재판에도 이르지 못하고 각하(dismiss)된 경우는 절반 이상(53%)이었다. 집단소송을 제기하려는 투자자들은 법원에서 허가를 받아야 재판에 이를 수 있는데, 법원으로부터 애시당초 허가조차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IPO와 관련한 소송도 각하된 경우가 5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2021년 7월 상장한 전자상거래 리스크관리 플랫폼 '리스크파이드'(Riskfied)에 대해 투자자들이 "기업공시 서류에 클라이언트 리스크 관리에 관한 내용이 부실했다"는 이유로 집단소송을 제기했지만, 미국 연방 법원은 지난 6월 "IPO 공시 내용이 탄탄했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미국 인기 주식중개플랫폼 '로빈후드'가 2021년 초 '게임스톱' 등 일부 종목에 대해 거래를 제한하자, 투자자들은 "주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주식 거래 제한으로 투자 손실을 봤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 로빈후드 집단소송을 위해 2만명이 모여 대화방을 만드는 등 화제였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저널은 "법원은 로빈후드 투자고객이 이미 거래 제한 등에 동의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해외와 달리 국내 상장사는 주가 폭락에도 집단소송 제도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조사결과 국내 증권집단소송 제도는 2005년 도입 후 증권집단 소송 제기 건수는 10건으로, 연간 0.7건에 불과하다.
일각에선 주가가 수년간 폭락한 국내 신규 상장사들이 미국 투자 소송 문화에 영향을 받을 경우 지금보다 훨씬 많은 집단소송에 직면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시플랫폼 카인드(Kind)는 지난 2020년 9월부터 올 8월까지 3년간 코스피에 상장한 기업은 30곳으로 상장 당일 종가와 비교해 주가가 지난달 말 하락한 기업은 83%였다. 50% 이상 하락한 기업도 12곳(40%)으로, 70% 하락을 보인 곳도 적지 않다. 지난해 국내 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전년과 비교해 578조원 쪼그라든 2649조원을 기록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주가 하락을 기업의 책임으로만 몰기엔 물가상승이나 경기둔화 요인이 적지 않기 때문에 대외 변수를 외면한 채 기업의 경영 부실만이 주가 하락의 원인이라는 상관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미국의 수많은 로펌들이 특정 기업을 타깃해 집단소송에 참여할 투자자를 모집한다"며 "홍보 마케팅에 열을 올리지만 기업 실적 개선으로 주가가 회복세를 보여도 외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