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정예린 기자] 미국 대형 가전업체 월풀이 가스·오븐레인지 인체 유해성 우려로 소비자 집단소송 위기에 놓였다. 유사한 소송이 가전 업계 전반에 잇따르며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23일 캘리포니아주 중부지방법원에 따르면 데브라 골드스타인씨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월풀이 일산화탄소, 이산화질소 등 유해 물질을 배출하는 가스레인지의 위험성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집단소송 참여자에 3배의 법적·징벌적 손해배상금 지불과 더불어 판매 금지 명령을 법원에 요청했다.
골드스타인씨는 당국과 주요 대학 기관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들었다. 가스레인지가 폐에 악영향을 미치는 이산화질소를 비롯한 발암물질을 방출한다는 게 원고의 주장이다. 배출량은 미 환경보호국(EPA)와 세계보건기구(WHO)가 호흡기·심혈관 질환, 암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규정한 수준을 넘어선다고 강조했다.
실제 발암물질 배출량이 EPA의 기준치를 초과한다는 스탠포드 대학교의 연구를 인용했다. 또 EPA의 조사 결과 질소산화물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심혈관 질환 △당뇨병 △출산 결과 저하 △조기 사망 △암 △소아 천식 △어린이 인지 능력 저하 등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가스레인지 이용하는 가정에서 자라는 어린이의 경우 그렇지 않은 어린이보다 천식에 걸릴 확률이 42% 더 높다고 우려했다.
골드스타인씨는 월풀이 가스레인지의 유해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소비자에게 고의적으로 알리지 않아 이익을 위해 기업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묵시적 보증·부당 이득 등 소비자 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다.
그는 "월풀은 1980년대부터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가 실내 공기 품질 문제로 인해 가스레인지의 (유해 물질) 배출을 규제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제조업체는 유해 물질의 위험성을 소비자에게 공개할 수 있고 공개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소비자는 가스레인지를 구매할지 여부에 대해 정보에 입각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미국에서는 정부 주도 하에 가스레인지를 퇴출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어 집단소송에 참여하는 원고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LG전자, 울프 등 다른 가전 브랜드도 같은 사례로 미국 각지에서 피소된 바 있다.
다만 이를 악용해 무차별인 소송 남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가 연방정부 차원의 가스레인지 사용 금지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발표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지의 뜻을 밝혔으나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 대도시들은 신축 주택에 한해 가스레인지 설치를 금지한 법률을 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