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 호치민(베트남)=오소영 기자] "트럼프 정부의 관세 발표 직후 베트남 협상단 200여 명이 기다렸다는 듯 미국으로 날아갔다. 이미 비자까지 준비해 뒀다는 뜻이다. 베트남이 미국에 뒤통수를 맞은 게 아니라 (결과를) 미리 알고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김남기 효성 베트남법인 PL은 지난 15(현지시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상호관세 발표 직후 베트남 정부의 대응 속도에 놀라움을 표했다.
김 PL은 "베트남 정부는 작년 10월부터 움직였다"고 말했다. 이어 "스타링크 도입을 승인하고 미국 보잉사의 항공기를 구매하는 등 선물 보따리를 풀어 4월 초에는 약간의 기대도 있었는데, 46%는 셌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베트남은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인 2020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됐었다. 또한 중국, 유럽연합(EU), 멕시코에 이어 네 번째로 적자 규모가 큰 무역 상대국이며, 중국의 대(對)미 우회 수출 통로로 불리기도 했다. 상호관세 부과는 불가피해 보였지만 46%는 예상보다 높았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관세로 수요 둔화 경계…美 수출 비중은 낮아
베트남에 사업장을 둔 효성은 관세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김 PL은 "고객사의 주문 감소가 우려된다"며 "다만 (관세는) 모든 기업에 영향을 미치고 다행히 효성은 미국으로 직수출하는 규모가 크지 않다"고 부연했다.
효성은 베트남에서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에어백 원사, 폴리프로필렌(PP) 등을 생산하고 있다. 제품별 수출 비중은 다르지만 평균 약 70~80%로, 이중 미국 비중은 크지 않다. 효성은 최종 소비재가 아닌 원자재를 생산하는 B2B(기업간거래) 중심 기업이기 때문이다. 가령 효성의 주력 제품인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는 의류·타이어 생산에 쓰이는 원자재다. 고객사에서 가공을 거쳐 완제품으로 만들어지고 해당 제품이 북미 시장에 공급되는 구조이므로 베트남에서 생산해 곧바로 미국에 수출하는 B2C(기업대소비자간거래) 기업들과는 다르다.
김 PL은 "아직 유예 기간이고 (양국 정부가) 협상 중이므로 일단 지켜보고 있다"며 현지 정부의 적극적인 협상 태도에 강한 신뢰를 표했다. 향후 협상 전망에 대해서도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면 결국 베트남이라는 글로벌 생산기지가 필요하다"며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관세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현지 냉장고 생산량을 줄인 LG전자나 생산기지 이전을 고민하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효성은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김 PL은 "스판덱스만 하더라도 중국과 베트남, 인도, 멕시코, 브라질, 튀르키예 등 여러 곳에 생산기지를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 생산 거점의 다변화를 이뤄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지인 임원 4명 발탁' 현지화 경영 가속화

효성은 지난 2007년 베트남 남부 연짝 공단에 법인을 설립하며 현지에 진출했다. 2015년 단일 공장 최대 규모의 스판덱스·타이어코드 생산능력을 지닌 동나이법인, 2018년 PP 공장, 2020년 북부 옌퐁 공단 ATM 기기 제조시설, 2022년 연짝 5공단 산업용 모터 생산법인 설립 등 투자를 지속했다. 현재 6개 법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간 수출액은 30억 달러(약 4조원), 직원은 약 1만 명에 달한다.
조현준 효성 회장은 작년 10월 방한한 팜 민 찐 베트남 총리를 만나 '100년의 미래'를 함께하자고 다짐했다. 이 약속은 하루아침에 나온 선언이 아니다. 지속적인 투자로 베트남 경제 발전과 궤를 같이한 그간의 행보를 반영하며, 미래 성장을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김 PL은 현지 정부뿐만 아니라 베트남 직원들에도 동반 성장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상징하는 대표 사례로 현지인 임원 제도를 들었다. 현지인 임원 제도는 2021년 시작됐다. 효성 베트남법인은 2년간 역량 교육과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통해 2023년 임원 3명, 2025년 1명을 선발했다. 김 PL은 "(베트남 직원들에) 효성에서 성장할 수 있는 경로를 보여주려 한다"며 "현지인 인재 육성을 통해 철저한 현지화 경영을 펼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현지화 경영은 어려운 시기에 더욱 빛났다. 코로나19 여파로 베트남 정부가 대대적인 셧다운을 진행하며 효성도 공장 가동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 효성 베트남법인은 직원들과 합심해 공장 인근에 생활 공간을 마련했다. 락앤락 철수 후 남은 건물을 개조해 텐트를 치고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덕분에 중단 없이 가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김 PL은 "약 6000명이 100일 동안 먹고 자며 함께 생활했다"며 "당시 (공장을) 방문한 호치민 당서기도 직원들과 만나고 놀라워했다"라고 회고했다.
또한 코로나19 여파로 실적이 부진했을 때에도 현지 직원들은 무급휴가를 내고 회사와의 고통 분담을 자처했다고 김 PL은 설명했다. 그는 "그 결과 해고자는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고 실적이 회복된 후 무급휴가로 받지 못했던 급여 외에 성과급을 지급했다"며 "회사가 직원에 믿음을 주고, 직원은 로열티를 갖고 일하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효성은 베트남에서 향후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먼저 내달 바리아붕따우성에 탄소섬유 공장 건설을 마치고 본격 가동에 나선다. 총 3단계 투자를 통해 연 2만15000톤(t)의 생산능력을 확보한다. 총 1조원을 쏟아 연산 20만 톤(t) 규모의 바이오 BDO 공장도 신설하고 있다. 내년 5만 t 규모로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