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정예린 기자] 미국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전력 수요에도 불구하고 인프라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당국이 전력망 구축에 발 벗고 나선 가운데 핵심 부품인 변압기와 전선 사업을 영위하는 우리 기업들이 수혜를 입을지 주목된다.
5일 미국 에너지부(DOE) 산하 로렌스 버클리 국립 연구소(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oratory)에 따르면 현재 미국 전역에서 전력망 연결을 기다리고 있는 프로젝트는 약 1만1600개로, 필요한 발전 용량은 미국 전체의 약 2배에 달하는 2598GW다. 이들 프로젝트는 인프라 부족과 인허가 지연에 따라 최종 상업 운전까지 평균 약 4~5년 이상 소요되고 있다.
용량 부족과 함께 전력망 노후화도 미국 산업 발전과 에너지 전환 목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각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 전달을 방해, 지역 간 전력 불균형과 전력 계통의 안정성 문제를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송전선의 70%는 최소 25년 전에 설치됐다. 대형 변압기의 평균 연령은 40년을 넘어 급증하는 전력 수요와 청정에너지 확산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은 최근 제조업 리쇼어링(Reshoring), 산업 전반의 전기화(Electrification), AI 데이터센터 확장 등 요인으로 인해 전력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대규모 투자와 정책적 지원을 통해 청정에너지를 포함한 분산에너지원(Distributed Energy Resources, DER) 전반의 안정적 통합과 전력 수급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 2021년 1조2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투자 및 일자리법(IIJA)'을 발표했다. 오는 2026년까지 도로, 수자원, 광대역 등 인프라 분야에 막대한 규모의 연방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에너지부는 IIJA를 기반으로 전력망 복원력 혁신 파트너십 프로그램에 105억 달러, 송전 원활화 프로그램에 25억 달러를 배정해 전력망 복원력을 강화하고 송전 용량을 확대한다.
구체적으로 에너지부는 작년 10월 송전 원활화 프로그램 일환으로 4개 대형 전력망 프로젝트에 15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루이지애나, 메인, 미시시피, 뉴멕시코, 오클라호마, 텍사스 등 6개 주에 걸쳐 약 1000마일의 신규 송전선을 건설, 약 7100MW의 신규 발전 용량을 수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동안 독립적인 전력망 구조를 유지했던 텍사스 전력망(ERCOT)을 최초로 타 지역과 연계하는 서던스피릿(Southern Spirit) 프로젝트도 포함돼 있다.
정책적 지원도 강화되고 있다. 지난 2023년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는 전력망 연결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규 발전원의 계통 연계 간소화 규정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이 규정은태양광, 풍력, 에너지저장장치(ESS)와 같은 청정에너지 프로젝트의 연계 절차를 간소화하는 조치를 담고 있다. 작년 5월에는 전력망 구축 장기 계획 수립 의무화, 장기 이익 고려, 전력망 확충 비용 분담 방안 개선 등을 골자로 한 전력망 구축 계획이 통과됐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투자와 규제 완화를 통해 미국이 전력망 병목현상을 해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전력 수요와 청정에너지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기반을 마련, 청정에너지의 효율적인 통합과 전력망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력망 현대화를 통해 신규 인프라를 구축하고 기존 전력망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초고압 변압기, 초고압 직류송전(HVDC), 초고압 교류송전(HVAC) 등 송배전 기자재가 필수적이다. 변압기를 만드는 LS일렉트릭, HD현대일렉트릭과 전선을 생산하는 LS전선, 대한전선 등 우리 기업들의 성장성이 기대되는 이유다.
LS전선은 미국에 해저케이블 생산 공장을 건설한다. 미국 해저사업 자회사 LS그린링크를 통해 6억8275만달러(약9500억)를 투자, 버지니아주 체사피크에 북미 생산거점을 구축한다. 지난달에만 미국에서 총 4400억 원 규모의 해저케이블 공급 계약 두 건을 따냈다.
대한전선은 2000년대 초 미국 법인을 설립하며 북미에 진출했다. 2017년 뉴저지에 동부지사를 추가 설립하며 시장 확대에 적극 나섰다. 최근 미국에서 진행되는 320kV 전압형 HVDC 및 500kV HVAC 프로젝트의 케이블 공급자로 선정됐다. 작년 한 해 미국에서 따낸 수주 규모만 7200억원 이상이다.
코트라(KOTRA) 달라스무역관 관계자는 "미국 전력망 현대화는 우리 기업이 미국 전력 산업에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라며 "우리 기업들은 미국의 전력산업 관련 정책 및 시장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현지 기업과의 협업 등을 추진, 향후 미국 전력망 현대화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를 빠르게 포착해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