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서거 10주기]① 반시장주의자? 신자유주의자?

[더구루=홍성일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10년이 흘렀다. 민주주의와 인권과 복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나라, 지역주의와 이념갈등, 차별의 비정상이 없는 나라가 그의 꿈이였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부터 초법적인 권력과 권위를 내려놓고, 서민들의 언어로 국민과 소통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상은 높았고, 힘은 부족했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의 꿈이 이 대한민국 안에서 살아숨쉬고 있다.

이에 매일뉴스는 △반시장주의자? 신자유주의자? △FTA 문을 활짝 연 대한민국 △집값 잡지 못한 종부세 도입 △수도권 중심 경제를 넘어 균형 발전을 꿈꾸다 등을 주제로 총 4회에 거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꿈꿨던 '사람답게 사는' 대한민국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참여정부처럼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정부도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보수진영은 '반시장주의자'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으며 노동계를 비롯한 진보진영은 그를 향해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한쪽은 정치적 이유와 부동산 규제가 한쪽은 한때는 같은 곳을 바라봤던 동지들에게 비판을 받아야만 했던 참여정부와 노무현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비난들에 "그럼 내가 '좌파 신자유주의'란 말이냐?"고 되묻기도 했었다. 

 

그는 정말 그렇게 극단적인 평가를 받아야만 했을까?

 

◇반시장주의자 노무현?

 

보수진영의 '반시장주의자' 공격은 노무현 대통령만에 국한된 공격은 아니었다. 

 

시장실패의 가능성을 우려해 규제를 해도 '반시장주의'라고 비난하는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국민의정부로부터 이어졌던 대북정책 기조와 연결되며 보수진영이 참여정부를 공격하는 단골 소재로써 이용됐다. 

 

정치사상적인 부분을 제외하고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반시장주의자'라는 비판을 강하게 받았던 부분이 있다. 

 

바로 '종합부동산세' 등을 포함한 부동산 가격 안정화 대책과 관련된 부분들에서 이다.

 

참여정부는 5.23 주택가격 안정대책을 시작으로 9·5, 10·29, 5·4, 8·31 등 다양한 형태의 부동산 가격 억제책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올라가는 주택가격을 언제하지 못했다. 

 

관련업계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너무 규제 일변도였으며 수요관리 대책이 공공주택 쪽으로 쏠려 민간 건축경기를 둔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시장경제에 어울리지 않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한편에서는 규제로 인해 부동산으로 향하던 자본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가며 주가상승을 이끌었고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의한 경제위기에 대비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하기도 했다. 

 

당시 부동산 정책은 추후에 다루기로 하며 이런 이유로 참여정부는 '반시장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달고 살아야만 했다.

 

◇신자유주의자 노무현?

 

1930년대 세계 경제를 뒤덮은 대공황의 그림자에 많은 사람들은 시장 실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고 케인즈, 사뮤엘슨으로 대표되는 신고전학파 종합이론의 등장은 큰 정부의 등장과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야기하게 됐다. 

 

이런 신고전학파 종합이론은 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를 유례없는 장기번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다고 정부는 비대해져 갔고 정부의 월권, 무능, 부패 등 국가의 실패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비판과 반성으로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영미에서 등장했다. 

 

하이에크와 프리드먼, 뷰캐넌 등이 선도했던 신자유주의는 자유방임주의 경제정책의 부활을 알렸고 영국의 마거릿 대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정부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참여정부는 '반시장주의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대통령으로 밀어올린 진보진영에게 '신자유주의자'라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신자유주의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김영삼 정부 말기였다. 이후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정부에서도 이 신자유주의를 수단으로 적극적 사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0년간 두 정부는 대한민국에 뿌리깊게 내려있던 정경유착의 고리를 신자유주의와 IMF의 손을 빌어 끊어내려했다. 

 

즉 재벌개혁의 수단으로 신자유주의를 적극 사용한 것이다.  

 

이 재벌개혁에 대해서도 '주주자본주의'로의 변화로 국가 경제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이 등장하게 된 것도 이 시기이다. 호황일 때는 '상위층'에 엄청난 소득을 안겨주면서도 어려울 때 원가절감 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자들을 비롯한 '하위층'에 책임이 유도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상황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졌다. 여기에 비정규직 문제도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비판했던 지점은 '한미FTA'의 체결이었다.

 

당시 진보진영은 한미FTA를 시장의 강자들만을 위한 정책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또한 미국의 이해를 대변한 불평등한 조약이라는 비판을 받기도했다. 

 

반면 보수진영은 반시장주의자라는 말을 쏙 집어넣고 찬사를 보냈다.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해 적극적인 정부의 개입 정책을 펴기도 했으며 대외적으로는 FTA와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체계에도 올라타려한 참여정부. 

 

하지만 빈부격차를 키웠다는 비판과 가치에 매몰돼 사회의 분열시켰다는 비판을 들어야만 했던 참여정부.

 

경제 둔화로 위기에 빠진 문재인 정부도 참여정부의 교훈을 새기고 고민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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