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 호치민(베트남)=오소영 기자]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남쪽으로 1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티엔장(Tiền Giang)성의 작은 시골 마을. 대형 버스에서 내려 다시 승합차로 갈아타고,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만한 좁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30여 분을 더 이동해 벤짜우 선착장에 도착했다. 메콩강과 바다가 만나는 베트남 최남단 메콩델타의 선착장. 이곳에서 다시 배로 갈아타고, 흐르는 땀을 바닷바람으로 식히며 30분가량 항해하니 수평선 위로 빌딩처럼 우뚝 선 거대한 풍력 터빈들이 점점 선명해졌다.
이 곳은 SK이노베이션 E&S가 운영 중인 총 150㎿ 규모의 탄푸동(Tan Phu Dong, 이하 TPD) 해상풍력 발전단지 현장. 베트남 티엔장 지역 내 최대 규모이자, 상업 가동에 들어간 최초의 해상풍력 프로젝트로 SK이노베이션 E&S이 보유한 글로벌 재생에너지 자산 중 가장 큰 발전단지다.
축구장 25개 만한 총 면적 25만㎡의 드넓은 해수면 위로 4.2㎿급 풍력 터빈 36기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높이 105m의 기둥에 지름 150m 날개로 구성된 각 터빈들은 500m 간격으로 나란히 설치돼 있었다.
기자가 지난 13일(현지시간) 찾은 곳은 선착장에서 가장 가까운 풍력 터빈 2호기다. 긴 여정에 보상하듯, 하늘은 티없이 맑았다. 5월의 베트남은 건기에서 우기로 바뀌는 시기지만, 마치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쨍쨍한 햇빛 아래 풍력터빈은 거센 바닷바람을 나르며 쉼 없이 돌아갔다. 이렇게 각 터빈이 매일 생산하는 평균 전력량은 약 35MWh 수준이다.
티엔장 지역은 연평균 6~8m/s의 안정적인 풍속과 적절한 수심, 평탄한 해저 지형 등 해상풍력 발전에 필요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어, 베트남 내 해상풍력 발전의 핵심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권기혁 SK이노베이션 E&S 베트남 대표사무소장은 "바람이 좋을 때는 10m/s를 초과하기도 한다"며 "오늘은 7m/s"라고 설명했다. 이어 "TPD 프로젝트는 니어쇼어(Nearshore)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오프쇼어(Offshore)와 유사한 수준인 약 34%의 이용률을 자랑한다"고 부연했다.
니어쇼어는 해안에서 10㎞ 미만인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설치된 해상풍력 발전소를 뜻한다. 10㎞ 이상인 오프쇼어 대비 설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나 풍력의 질과 양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TPD 프로젝트는 안정적인 바람으로 니어쇼어와 오프쇼어의 장점 모두를 취했다.
TPD 프로젝트의 총 사업비는 약 4500억원으로 2021년 10월 50㎿의 1단계 사업에 이어, 2023년 5월 100㎿의 2단계 사업이 완료되며 종합 준공됐다. 베트남 대기업 그룹인 TTC의 재생에너지 자회사 GEC가 처음 개발에 나섰고, SK이노베이션 E&S는 2022년 파트너사로 참여하며 지분 45%를 확보했다.
지난 연간 발전량은 총 443GWh로 베트남 현지 기준으로 약 20만 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규모다. 탄소 배출 없이 오로지 바람의 힘으로 24시간 전기를 생산함으로써 온실가스 저감과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 모두에 기여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E&S는 생산된 전력을 베트남 국영전력회사인 EVN과 장기 고정가격 계약을 맺고 판매하면서, 연간 약 500억원의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확보했다.
◇글로벌 전초기지 '베트남'에 1GW 이상 파이프라인 보유
SK이노베이션 E&S는 글로벌 재생에너지 사업의 전초기지로 베트남을 주목하고 선제적인 투자를 이어왔다.
지난 2020년부터 남부 닌 투언 지역에 131㎿ 규모의 태양광 설비에 투자한 것을 시작으로 2022년에는 150㎿ 규모의 TPD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또한 베트남 현지 재생에너지 기업 GEC와 합작법인 '솔윈드 에너지(Solwind Energy)'를 설립했으며, 첫 프로젝트로 떠이닌 지역에 온실가스 감축 시범사업인 7㎿ 지붕형 태양광을 준공했다. 라오스 살라반 지역에 756㎿의 육상풍력발전소를 구축해 생산된 전력을 베트남으로 수출하는 크로스 보더 발전사업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태양광 131㎿, 풍력 150㎿, 지붕형 태양광 7㎿ 등 총 288㎿의 자산을 운영 중이다. 개발까지 포함하면 약 1GW 규모의 파이프라인을 구축했으며, 연간 약 39만 톤(t)의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고 있다. 2023년 6월에는 베트남 호찌민에 재생에너지 사업 대표 사무소를 여는 등 신규 프로젝트 발굴과 사업 개발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E&S가 베트남을 택한 이유는 재생에너지 사업에 유리한 자연 환경과 우호적인 국가 정책을 토대로 급격한 성장에 있다. 베트남은 일조량이 많은데다 남북으로 긴 해안에서 연평균 고른 바람이 불어 태양광과 풍력발전에 최적의 입지로 꼽힌다. 권 소장은 "(태양광을 보면) 하루 24시간 기준 한국은 4시간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데 베트남은 5시간 가능하다"며 "풍력 또한 수심이 완만하게 깊어져 한국에서 오프쇼어 프로젝트로 얻을 효율을 베트남에서는 니어쇼어로 획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베트남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육성하며 시장의 성장성도 밝다. 지난 4월 제8차 국가전력개발계획(PDP8) 개정안을 통해 전체 전력 생산량 중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최대 36%까지 충당하고 2050년에는 75%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수요 급증도 SK이노베이션 E&S의 투자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베트남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애플, 인텔 등 다수의 글로벌 제조 기업들이 진출한 핵심 생산 기지다. 이 기업들의 RE100 이행 압박과 동시에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세 시행이 가까워오면서 재생에너지 전력 수요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베트남 정부는 작년 7월부터 처음으로 재생에너지 직접 PPA(전력거래계약) 제도를 도입했다. SK이노베이션 E&S도 베트남에 진출한 글로벌 제조 기업들을 대상으로 재생에너지 공급을 위한 PPA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미래 핵심 자산' 탄소배출권 확보 박차
탄소배출권 확보 이슈는 SK이노베이션 E&S가 글로벌 재생에너지 사업에 뛰어든 중요한 이유다. 향후 글로벌 탄소시장이 열리면 탄소배출권은 직접적인 수익 창출의 수단이자, 기업의 탄소중립 실행에 필수적인 핵심 전략자산으로서 그 가치가 급격히 커질 전망이다.
글로벌 탄소시장이 기존 CDM(청정개발체제)에서 파리협정 기반의 SDM(지속가능발전체제)으로 전환되면서, 모든 국가가 감축사업에 참여해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에 활용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작년 11월에 열린 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SDM 이행지침이 마련되며 시장 출범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2027년까지 SDM 기반의 탄소 시장 개화를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각국 정부의 탄소 규제도 강화되면서 전세계 기업들의 탄소배출권 확보를 위한 움직임들도 덩달아 빨라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 E&S는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선제적인 탄소배출권 확보에 나섰다. TPD 해상풍력 프로젝트 투자 당시, 향후 온실가스 감축 사업으로 인정받으면 발급될 탄소배출권 전량을 15년간 SK이노베이션 E&S가 갖는 조항을 계약에 포함시켰다. 이를 통한 탄소배출권 예상 확보량은 연간 약 26만 t 규모다. 향후 SDM 체계가 확립되면 베트남 내 다른 프로젝트들도 탄소배출권을 즉시 확보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재생에너지 파이프라인 2030년까지 2배 이상 확대
SK이노베이션 E&S는 베트남에서 쌓은 경험과 역량을 토대로 동남아와 동유럽, 북미 등으로 무대를 넓히며 글로벌 재생에너지 사업 확장을 본격화한다. 현재 보유한 약 1GW 규모의 글로벌 파이프라인을 2030년까지 2배 이상으로 키워 재생에너지 사업을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에너지 포트폴리오의 핵심 축으로 키운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기존 탄소배출권 확보 중심의 사업을 넘어 글로벌 제조기업들의 RE100 수요에 대응하는 'RE100 설루션 사업'으로 비즈니스 모델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국내 제조기업들이 많이 진출한 동남아, 동유럽, 북미 등에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개발하여 RE100 이행이 필요한 기업들에게 PPA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SK이노베이션 E&S는 이미 국내에서 민간 최대의 재생에너지 PPA 공급사업자로 누적 공급계약규모가 1GW를 넘어서는 등 경쟁력을 입증한 바 있다. 국내 시장을 선도해 온 경험과 실행 역량을 적극 활용해 글로벌 시장도 적극 진출할 방침이다.
SK이노베이션 E&S 관계자는 "국내 민간 1위 재생에너지 사업자로서 축적해온 경험과 실행 역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도 적극 개척해 나가겠다"라며 "재생에너지 사업을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종합 에너지 포트폴리오의 핵심 축으로 육성하고, 탄소 감축에 적극 기여하는 글로벌 재생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