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일본)=진유진 기자] "일본에 브랜드를 심어야 한다는 고(故) 신춘호 창업주의 확고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타협하지 않고 우리 고유의 매운맛 DNA를 지켜온 것이 오늘날 일본인들이 신라면의 맛을 알아준 비결입니다."
인스턴트 라면의 발상지이자 매년 1000여 종의 신제품이 쏟아지는 라면 격전지 일본. 이 보수적인 시장 한복판에서 농심이 '매운맛'이라는 독보적 카테고리를 구축하며 K-라면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정체된 시장 환경 속에서도 농심은 5년 만에 매출을 두 배 이상 끌어올렸다.
김대하 농심 일본법인장은 지난 15일 일본 도쿄 하라주쿠 '신라면분식' 팝업스토어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신라면은 일본 시장에 매운 라면이라는 수요 자체를 창출한 브랜드"라며 "연평균 17% 이상의 성장세를 유지해 2030년까지 매출 400억 엔(약 3700억원) 달성과 일본 인스턴트 라면 톱6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법인장의 자신감은 숫자로 증명된다. 농심 일본법인 매출은 지난 2020년 95억 엔에서 2021년 111억 엔으로 100억 엔을 돌파한 이후 △2022년 125억 엔 △2023년 145억 엔 △2024년 173억 엔 △2025년 209억 엔으로 확대됐다. 4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성장한 셈이다. 올해 목표는 240억 엔이다.
신라면 단일 브랜드 성과도 뚜렷하다.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일본 시장 내 누적 매출은 1조원을 넘어섰다. 현재 일본법인 매출의 70~80%를 차지할 정도로 브랜드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농심의 일본 진출은 지난 1981년 동경사무소 설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은 기술과 설비에서 한국을 압도하는 라면 종주국이었다. 농심은 현지 노하우를 흡수하는 동시에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수출을 확대했다.
이후 지난 1997년 세븐일레븐 입점, 2002년 일본법인 설립, 2009년 직판 체계 구축 등 현지화 전략을 이어왔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구호 물품으로 보낸 신라면이 현지인들에게 너무 매워 배탈이 난다는 말을 듣고 사리곰탕면으로 급히 교체했던 일화나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한 매출 급감 등 위기도 있었지만, 브랜드 중심 전략을 유지하며 성장 기반을 다졌다.
김 법인장은 "현지 식문화에 스며들면서도 신라면 고유의 매운맛을 그대로 전파하자는 창업주의 철학대로 농심 DNA를 철저히 준수했다"며 "지난 10년간의 성장은 일본에 없는 차별화된 맛을 꾸준히 전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성과는 현지 시장 구조 변화와 맞물려 있다. 일본 라면 시장은 약 7조원 규모로 성장이 정체된 반면, 매운맛 카테고리만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김 법인장은 "현재 일본 라면 시장에서 성장하는 유일한 영역이 매운맛"이라며 "신라면이 이 시장 확대를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매운맛 라면 시장은 전체의 약 6% 수준이지만, 오는 2030년에는 500억 엔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신라면 일본 매출은 지난해 165억 엔으로 약 40% 비중을 차지하며 매운맛 라면 1등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농심은 2030년까지 시장 점유율 50% 확보를 목표로 한다.
성장 일등 공신은 신라면 툼바다. 지난해 4월 일본 세븐일레븐 선출시 당시 초도 물량 100만 개가 2주 만에 완판됐고, 이 기세를 몰아 지난달 패밀리마트와 로손까지 일본 3대 편의점 5만3000여 개 전 점포 입점에 성공했다. 해외 라면 브랜드로서는 이례적인 성과다. 현재 일본 내 누적 판매량은 1000만 개를 넘어섰다.
김 법인장은 "2015년 신라면에 이어 두 번째 전 점포 입점 사례"라며 "편의점 중심 일본 유통 구조에서 브랜드 경쟁력을 입증한 상징적 성과"라고 평가했다. 올해를 '신라면 툼바의 해'로 삼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마케팅 전략도 체험 중심으로 진화했다. 간담회가 열린 신라면분식은 대기 시간이 3시간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정영일 농심 일본법인 성장전략본부장은 "TV 광고와 옥외광고를 비롯해 K-팝 그룹 비스트(하이라이트)를 활용한 마케팅, 키친카, 공항 카트, 버스 래핑, 스포츠 구단 협업 등 다양한 채널로 소비자 접점을 확대해 왔다"며 "삿포로 눈축제와 일본 최대 식품 유통 전시회 'SMTS' 등 대형 이벤트 참여를 통해 브랜드 경험을 강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올여름 에노시마 해변 식당 운영뿐 아니라 오는 7월 미니 팝업을 준비 중"이라며 "케이콘(KCON) 등 주요 행사에서 너구리 단독 부스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농심은 브랜드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해 성장세를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현재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신라면에 이어 너구리를 제2 파워브랜드로 육성할 계획이다. 너구리는 우동에 가까운 차별화된 콘셉트로 일본 소비자 반응이 좋은 만큼, 향후 성장에 대한 기대도 크다.
현지 경쟁 환경 역시 변화하는 추세다. 닛신, 도요스이산 등 일본 대형 라면 제조사들도 매운맛 제품을 잇달아 출시하며 신라면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김 법인장은 "현지 기업들이 매운맛 제품을 잇달아 출시하는 것은 시장 기준이 형성됐다는 의미"라며 "신라면을 중심으로 업계 톱6 브랜드로 도약하는 한편, 너구리와 감자면, 짜파게티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일 신라면 건더기 차이와 관련해 김 법인장은 "일본은 건더기와 별첨에 진심인 시장"이라며 "후발주자로서 현지 제품과 경쟁하기 위해 본사에 건더기 양을 늘려달라고 요청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판매가가 한국보다 높은 만큼 차별이 아닌 철저한 현지화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라면의 본고장 일본에서 브랜드를 정착시키겠다는 초심을 지켜가겠다"며 "너구리 제2 파워브랜드 육성과 함께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겠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