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의 거센 물결이 반도체 산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기업들은 저마다의 기술력을 내세우며 글로벌 AI 시장에서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고객사 확대에 나서고 있다. 대만 반도체 전시회 '세미콘 타이완' 현장에서 기업들이 내놓은 생존 해법을 엿봤다. -편집자주
[더구루 타이페이(대만)=오소영 기자] "30년 전만 해도 극자외선(EUV)은 지나치게 진취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여겨졌다. 급변하는 반도체 시장에서의 전략·경제적 파급효과도 불확실했다. 그만큼 도전적이었지만 개척 정신과 끊임없는 헌신, 팀워크를 바탕으로 EUV 리소그래피를 선보일 수 있었다. 오늘날 이 기술은 인공지능(AI)용 고성능 칩과 스마트폰 생산을 가능케 만들었다."
토마스 슈탐틀러(Thomas Stammler) 자이스 반도체기술본부(SMT)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EUV의 달라진 위상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 세미콘 타이완서 '생산성 3배 향상' AIMS® 공개

자이스는 1997년부터 네덜란드 ASML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EUV 장비에 들어가는 광학 시스템을 독점 공급했다. EUV는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를 찍어내는 노광 공정에 사용되는데, EUV의 생성과 제어에 자이스의 부품이 필수다. EUV 장비 1대에 필요한 자이스 부품은 3만개 이상이다.
자이스는 광학 시스템 기술을 앞세워 지난달 10~12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반도체 전시회 '세미콘 타이완'에도 참가했다. 자이스 SMT와 현미경 솔루션 연구를 담당하는 RMS(Research Microscopy Solutions)가 공동으로 부스를 조성했다. 슈탐틀러 CTO는 "대만은 반도체 생태계의 핵심 축으로 제조뿐만 아니라 인재 개발, 국제 협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혁신을 공유하고 파트너 및 고객들과 만나 업계 통찰을 교환하며 관계를 시작하거나 이어갈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자이스는 세미콘 타이완에서 포토마스크의 인쇄 성능을 평가하는 검사 장비 'AIMS®'와 첨단 패키징용 솔루션을 선보였다. 가장 주력으로 내세운 솔루션은 AIMS® EUV 3.0이다. 이 장비는 이전 버전인 AIMS® EUV 1.0 대비 포토마스크 처리 성능이 약 3배 향상됐다. 차세대 하이-나(High-NA) EUV 장비와도 호환된다.

◇자이스, AI 반도체용 첨단 광학 솔루션 제시
슈탐틀러 CTO가 강조한 자이스의 경쟁력은 독자 개발한 반사거울이다. EUV는 파장 13.5나노미터(nm)의 극자외선을 활용한다. 파장이 짧아 미세 회로를 그릴 수 있으나 그만큼 예민하다. 공기나 렌즈에 닿으면 사라져 내부를 진공 상태로 만들어 빛이 흡수되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대신 특수 제작된 반사거울을 이용해 빛을 반사·전달시켜 웨이퍼로 보내야 한다.
자이스는 반사거울을 유일하게 만들 수 있는 회사다. 슈탐틀러 CTO는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거울을 만드는 기업'이라고 자부했다. 만약 반사거울을 독일 전체 땅 크기로 키운다고 가정하더라도 미세한 굴곡에서 가장 높이 솟은 부분은 0.1㎜(머리카락 굵기 정도)에 불과하다. 사실상 완벽한 평면에 가까워 난반사 없이 원하는 위치에 정확한 패턴을 새길 수 있다는 게 슈탐틀러 CTO의 설명이다.
슈탐틀러 CTO는 AI 확대로 복잡한 연산과 학습·추론을 수행하기 위해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봤다. 컴퓨팅 파워와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 새로운 니즈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자이스는 미래 수요에 대응하고자 생산 역량을 크게 확대하고 있다"며 "강력하고 에너지 효율적인 반도체 수요가 가속화되며 이에 맞춰 기술을 발전시키고 고객과 로드맵을 조율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슈탐틀러 CTO는 마지막으로 "노드별 최첨단 광학 솔루션을 공급하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남는 것이 목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삼성, SK하이닉스 같은 칩 제조사가 있는 한국은 반도체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최근 소부장 기업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자이스는 이 분야에서 높은 잠재력과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