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김은비 기자] 유럽연합(EU)이 2035년 내연기관차 퇴출 시한을 2050년으로 늦추는 방안을 두고 논의 중이다. 유럽 완성차업계와 부품 단체가 일제히 목표 조정을 요구하고 나서면서다. EU가 탄소중립 시한 연장 여부가 향후 글로벌 전기차 시장 판도를 가를 분수령으로 떠오르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와 자동차부품협회(CLEPA)는 최근 유럽집행위원회(EC)에 “현행 2030·2035년 탄소 감축 목표치는 전 세계 시장 환경 변화 속에서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담긴 공식 서한을 전달했다. 이번 움직임은 ACEA 회장인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CEO를 비롯해 폭스바겐, 스텔란티스 등 주요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주도했다.
ACEA는 "EU가 정한 두 단계 목표, 즉 2021년 대비 2030년까지 55% 이산화탄소 감축과 2035년 100% 감축이 ‘비현실적’"이라며 “전기차가 완성차 시장을 주도할 것은 분명하나, 하이브리드·내연기관 효율 개선·수소·합성연료 등 다양한 경로를 동시에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CEA와 CLEPA는 전기차 수요 둔화와 충전 인프라 부족, 중국 브랜드의 저가 공세와 생산비 격차를 이유로 내세웠다.
특히 올해 초 스웨덴의 배터리 스타트업 노스볼트가 파산하면서 유럽 내 대규모 배터리 공급망이 사실상 붕괴된 것이 결정타가 됐다. 이로 인해 유럽 완성차업계는 배터리 조달을 중국 CATL·BYD, 한국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아시아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배터리 자급 능력을 잃은 상태에서 2035년까지 전기차 전환을 강행하면 핵심 부품을 해외에 의존하는 구조적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 이들의 핵심 주장이다.
오는 12일(현지시간) 열릴 EU 집행위원회 고위급 회의가 예정돼 있어, 이 회의가 탄소중립 정책 연장 여부를 가를 '첫 관문'이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탄소중립 시한을 늦추느냐 유지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이 갈릴 것”이라며 “정책 결정이 특정 지역 기업들의 이해득실을 넘어 산업 패권 경쟁으로 직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