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오소영 기자] "영일만타운을 세계에서 제일가는 전기차 소재 1번지로 만들겠습니다."
2018년 3월 24일. 에코프로가 포항에 첫 공장을 준공한 날, 이동채 회장이 했던 약속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22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영일만 산업단지 내 에코프로 3캠퍼스는 에코프로비엠의 양극재(연산 3만6000t), 에코프로이노베이션의 수산화리튬 2공장(1만3000t) 공사가 한창이었다. 뼈대를 드러낸 5층이 넘는 구조물 바로 옆에 또 다른 구조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건설자재가 켜켜이 쌓여있고 자재를 실어 나르는 트럭 여러 대가 캠퍼스 안을 분주히 돌아다녔다.
포항 캠퍼스의 빠른 성장은 직원들도 실감하고 있다. 기자와 동행한 에코프로 관계자는 "사무 공간이 부족하다"며 "교육과 면접 등으로 오늘도 회의실이 꽉 찼다"고 전했다.
◇10년 방치된 공터에 '이차전지 가치사슬' 구축

에코프로가 둥지를 튼 영일만 산업단지는 원래 조선산업의 부흥을 목적으로 조성됐다. 포항시는 194만㎡ 규모로 1~2 산업단지를 만들고 조선기자재 생산 허브로 키워낼 계획이었으나 쉽지 않았다. 조선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오랜 기간 불황을 겪었다. 포항시는 공터를 그대로 둘 수 없어 입주 기업을 찾기 시작했다.
때마침 에코프로는 포항과 새만금 등을 후보로 검토 중이었다. 이 회장은 포항시 남구 대송면에서 태어나 포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영일만항이 인근에 있어 제품 수출과 원료 수입에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포항시도 적극적이었다. 이강덕 시장은 이동채 회장을 직접 찾아 설득했다. 투자지원금과 이주 직원에 대한 지원, 산업단지 내 대중교통 노선 확대, 신속한 인허가 등을 지원키로 했다.
에코프로는 결국 포항을 최종 투자처로 낙점했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당시 에코프로지이엠)는 2017년 6월 1공장을 착공한지 9개월 만에 생산을 시작했다. 2019년 10월 에코프로BM 제1공장을 준공했고 2년 후 에코프로EM, 에코프로AP, 에코프로이노베이션, 에코프로CNG 생산시설이 들어섰다. 부지 규모만 약 10만평으로 현재까지 총 1조8500억원이 투입됐다. 포항시와 경상북도가 약 350억원을 지원했다.
에코프로는 지속된 투자로 포항에 '클로즈드-루프 에코 시스템(Closed Loop Eco-System)'을 완성했다. 클로즈드 루프는 '수산화리튬-전구체-양극재-리사이클링'까지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완결형 가치사슬을 뜻한다.
에코프로는 이 시스템을 통해 원가 절감을 꾀하고 있다. 가령 에코프로BM·EM은 에코프로AP로부터 소성로 공정에 쓰이는 고순도 산소를 공급받는다. 소성로는 전구체에 수산화리튬을 섞어 800~900도의 고온에 굽는 공정이다. 이때 고순도 산소가 필요하다. 에코프로 측은 "지하 파이프라인을 통해 1~3캠퍼스에 고순도 산소를 공급한다"며 "대기 중에 있는 공기를 포집해 산소를 생산하기 때문에 별도의 원료비가 들지 않고 원가 절감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동채의 포항 사랑…투자·인원 '쑥쑥''

포항 캠퍼스의 확장과 맞물려 에코프로는 급속도로 성장 중이다. 에코프로는 포항에서 연간 양극재 15만t, 전구체 5만t, 리튬 1만3000t 등을 생산하고 있다. 포항 공장을 본격 가동하던 2018년 6694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5조6000억원으로 뛰었다. 에코프로는 원재료비 상승과 환율 영향을 감안해 올해 매출을 8~9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회장이 2018년 준공식 당시 이야기한 2023년 매출 5조원의 1.5배 이상이다.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 에코프로 그룹사 인원은 2018년 1132명에서 올해 3400명으로 늘었다. 2100명이 포항에 상주한다. 현재 생산직에서만 100명이 넘는 채용이 진행 중이다.
생산직의 평균 나이는 31세다. 1인 가구가 많고 외부 유입 인력도 상당하나 기숙사는 제공되지 않는다. 에코프로는 대신 일정 금액의 주거비를 준다. 에코프로 측은 "기숙사에 혼자 고립되기보다 밖에 나가 지역민과 교류하고 포항에서 살 수 있는 터전을 닦으라는 회장님의 뜻"이라고 부연했다.

향후 포항에서의 채용 인원은 증가할 전망이다. 에코프로가 1~3캠퍼스에 그치지 않고 추가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서다. 에코프로는 인근 약 16만5000㎡(약 5만평) 부지에 4캠퍼스를 조성하고 있다. 투자비는 약 1조원. 4캠퍼스에는 에코프로BM,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에코프로CnG, 에코프로AP 등 4개사가 입주한다.
영일만 산업단지와 차로 약 40분 거리인 블루밸리 국가산단에도 공장을 짓는다. 에코프로는 약 69만4000㎡(약 21만평) 부지에 2028년까지 5년간 2조원을 쏟을 계획이다. 2028년까지 포항에만 약 4조9000억 원을 투자하게 되는 셈이다.
질적 성장도 도모한다. 에코프로는 NCMX, LFP 양극재를 개발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한다. 현재 20%를 소폭 웃도는 전구체 내재화율을 2027~2028년 30% 이상으로 키운다. 재활용 원료의 사용 비중은 3%에서 2027년 15%로 향상시켜 가치사슬을 강화한다.
에코프로가 포항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며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후속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영일만 산업단지에 연산 3만t 규모의 양극재 1단계 공장 건설을 마쳐 시운전하고 있다. 포스코와 중국 CNGR의 니켈 정제·전구체 합작공장, GS건설의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도 영일만에 구축된다.
해외에도 귀감이 되고 있다.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강소기업들로 꾸려진 경제사절단은 최근 에코프로 포항 캠퍼스를 둘러봤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일군 배터리 기술력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