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한아름 기자] 보령의 발걸음이 심상치않다. 지난해 창업 이후 65년 만에 사명을 바꾼데 이어 김정균-장두현 각자대표로 쌍두마차 체제를 본격화했다. 오너와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해 전문경영인 시스템의 장점을 살리면서 오너 후계자가 경험을 쌓는 발판을 마련했다.
업계는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각자 대표 체제를 도입하는 가장 큰 배경으로 경영 효율 제고를 꼽는다. 기업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경영 책임을 함께 지도록 함으로써 오너와 전문경영인 체제의 강점을 동시에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년여 성적표는 합격점이다. 지난해 3분기 역대 최대 분기 매출을 기록하며 목표 연 매출액인 6500억원 달성에 한 발짝 다가섰다. 보령은 LBA(레거시 브랜드 인수) 전략 확대와 연구개발 자회사 리큐온 흡수합병을 통해 사업 시너지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85년생인 김 대표는 창업주인 김승호 명예회장의 외손자이자 김은선 회장의 아들이다. 미국 미시간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4년 보령제약 이사대우로 입사해 전략기획팀, 생산관리팀, 인사팀장을 거쳐 2017년부터 보령제약의 지주회사인 보령홀딩스 사내이사 겸 경영총괄 임원을 거쳐 지난해 지휘봉을 잡았다.
김 대표는 30대 특유의 젊은 감각으로 보령을 새롭게 단장했다. 제약을 지우고 간판도 바꿨다. 제약을 넘어 헬스케어 산업 전반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김 대표의 의중이 반영됐다. 뉴보령에 맞춰 신사업 발굴에도 주력하는 모습이다. 미개척 영역인 '우주 분야 헬스케어' 선점을 위해 2년여간 준비한 'CIS(Care In Space)'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우주 분야 헬스케어가 미래 먹거리가 되어줄 것이란 판단에서다. 우주 공간에서 발생하는 건강 문제를 해결할 의료기기, 진단, 제약 등 다양한 분야에 선도적으로 대응하겠다는 포석이다. 스타트업 발굴을 위한 ‘CIS 챌린지(Challenge)’를 통해 6팀을 선정,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의 투자금과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 참여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경영능력과 별개로 김 대표는 다른 재벌 3세와 비교해 친숙하고 인간적이라는 평가를 안팎에서 받는다. 그는 의전 차량 대신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회사를 출퇴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사와 인접한 서울대병원 교수진과 만날 때도 할리데이비슨을 탄다. 업계의 보수적인 분위기와 재벌 3세 사이에선 흔치 않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권위적이지 않고 편한 이미지로 직원과 업계 관계자들과 만나다 보니 오너와 임직원 간의 벽을 허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며 "젊은 층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LBA 통해 수익성 확대…17년 연속 성장세 지속 의지
오너 김 대표가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를, 수익성 극대화는 전문경영인이 살림살이를 맡았다. 김 대표와 대학 동문인 장두현 대표는 1999년 미국 미시건대(앤아버) 경제학∙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미국 이동통신사 AT&T(Teleglobe) 재무팀, CJ그룹 경영전략실, CJ대한통운 해외사업 기획관리, CJ CGV 베트남사업 총괄 등을 역임했다. 2014년 보령홀딩스 전략기획실장으로 입사한 후 보령제약 운영총괄, 보령제약 경영총괄 부사장을 거쳤다.
2014년 홀딩스 전략기획실장을 시작으로 보령과 인명을 맺은 그는 전무·부사장·사장으로 승진한 전문경영인이다. 그의 대표 성과는 자체 품목을 확대한 점이다. 장 대표가 취임하기 전 2020년 보령의 자체 제품 비중은 52%에 불과했지만 최근 60%를 넘기며 수익성을 높였다.
실적도 좋다. 보령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보다 18.6% 늘어난 1877억원으로 잠정집계됐다. 이미 1~2분기 매출액도 전년보다 23.4% 성장한 3427억원을 기록한 상태다. 보령 매출은 2005년부터 16년 연속 성장했다. 김 대표는 17년 연속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 추가 성장동력을 힘을 쏟고 있다.
그가 꺼내든 'LBA' 전략은 수익성 확대에 주역사업으로 성장했다. LBA란 이미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을 매입하는 사업 전략이다. 블록버스터급 오리지널약물의 브랜드 인지도와 지위는 유지하되 제약사가 직접 생산·유통 전부를 운용한다는 의미다. 원가절감에 따른 수익성 추가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 글로벌 제약사인 일라이 릴리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알림타'에 대한 자산 양수·양도 계약을 체결했다. 알림타는 보령이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국내 권리를 인수한 세 번째 품목이다. 릴리로부터 항암제 젬자와 조현병 치료제 자이프렉사의 국내 권리를 인수한 바 있다. 이밖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항암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온베브지'와 '삼페넷' 등 항암제 다수의 국내 판권을 갖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 9월엔 소세포폐암 치료제 '젭젤카'를 도입해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도 획득했다. 젭젤카는 미국에서는 재즈 파마슈티컬스(Jazz Pharmaceuticals)가 파마마와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 지난 2020년 시판한 블록버스터 약물이다. 이런 행보는 보령의 강점인 항암 시장에서 선두 지위를 굳히겠단 장 대표의 의지가 강하게 읽힌다.
◇ 카나브 내년 특허 만료… 복합제·적응증 추가 전략
다만 업계 안팎에선 올해 보령의 위기가 찾아 올 것이란 우려도 적지않다. 토종 신약 '카나브'의 특허가 올해 만료되기 때문이다. 카나브의 조성물 특허는 2031년 만료되지만 물질 특허(피마사르탄)은 2월에 끝난다. 일단 물질 특허가 만료되면 경쟁사들이 일제히 추격에 나선다. 경쟁사들이 제네릭(복제약)을 쏟아내면 오리지널 의약품의 가격은 하락한다. 매출액 감소를 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특허 만료는 제약사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이벤트 중 하나로 꼽힌다.
장 대표는 위기 대응력을 한층 끌어올리고 정공법을 선택했다. 다양한 성분을 섞은 복합제 제품군을 늘려 카나브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추후 특허 만료 후 본격화될 제네릭 총공세에 맞서겠단 계획이다. 일찌감치 대책 마련에 나섰다. 카나브 자체 적응증을 추가하고 제품 라인업을 늘려 경쟁력을 강화했다.
여기에 다양한 성분을 섞은 복합제 제품군도 지속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출시한 고혈압 3제 복합제 '듀카브플러스'가 대표적이다. 카나브를 중심으로 칼슘채널차단제 암로디핀과 이뇨제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를 합쳤다. 카나브 단일제나 2제 복합제 듀카브로도 혈압조절이 되지 않는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쓰인다. 장 대표의 계획대로라면 카나브의 특허가 만료되더라도 제품군 매출이 더욱 늘 것으로 예상된다. 보령은 4년 내 카나브 제품군 매출을 2000억원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업계는 승계 작업에 방점을 찍은 보령의 쌍두마차 경영에 글로벌 진출 뿐만 아니라 역동적이고 도전적인 기업 문화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보령의 경우 확실한 역할 분담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면서 "의사결정을 다원화시켜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사업성을 극대화시키는 한편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각자대표 체제가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좋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김정균 대표의 프로필이다.
▲1985년생 ▲미국 미시건대 산업공학과 졸업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 사회행정약학 석사 ▲2011년 삼정KPMG ▲2014년 보령제약(현 보령) 입사 ▲2018년 보령홀딩스 대표 ▲2022년 보령 대표
다음은 장두현 대표의 프로필이다.
▲1976년생 ▲ 미국 미시건대 경제학과·정치외교학과 졸업 ▲1999년 AT&T ▲2000년 CJ그룹 ▲2014년 보령홀딩스 ▲2019년 보령제약 운영총괄 전무 ▲2021년 보령제약 경영총괄 부사장 ▲2021년 보령제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