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길소연 기자] 현지 기업들의 알력 다툼으로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렸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이하 한화에어로)의 K9 자주포 스페인 수출에 다시 속도가 붙는다. 스페인이 K9 자주포의 지적재산권(IP)과 설계 권한을 이전하는 조건을 수용하면서 수출이 가시권에 들었다.
합작법인(JV) 설립과 현지 생산 기반 구축을 통해 유럽 '방산 블록화'에 대응하고 있는 한화에어로는 생산·조립 거점을 통한 현지화 전략으로 유럽 내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23일 스페인 매체 몬클로아(Moncloa)와 인포데 펜사(Infodefensa) 등 현지 외신에 따르면 스페인 최대 방산기업 인드라(Indra)는 한화에어로와 K9 자주포 기반으로 스페인 포병 현대화 사업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협의 중이다. 이르면 이달 안에 전략적 협력을 체결할 예정으로 인드라가 한화에어로의 K9 자주포 지적재산권을 획득하고 설계 권한을 확보해 스페인군 요구에 맞춘 버전을 개발하고 향후 국제 수출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지난해부터 논의해온 양사의 협력은 K9 자주포를 단순 완제품 구매가 아니라 스페인 자국 기술을 주도적으로 활용해 한국산 자주포를 스페인 버전인 'K9E'로 개발하는 공동 개발 프로젝트로 추진한다. 인드라와 현지 방산 기업 EM&E의 합작법인이 주도해 스페인 국방부와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확정할 계획이다. <본보 2025년 12월 2일자 참고 : 스페인 최대 방산기업 인드라, 한화 K9 자주포 도입 추진>
업무 분담도 이미 확정됐다. 인드라는 궤도 차량을 설계, 개발 및 제조하는 주요 플랫폼 역할을 맡고, 스페인 첨단 전자 시스템 전문 기업 EM&E는 포병 모듈을 주도해 대포, 기동성 및 탄약 발사 시스템을 담당한다.
현지 생산을 위해 생산거점도 마련한다. 스페인 아스투리아스에 있는 히혼(Gijon)의 엘 탈레론(El Tallerón) 시설에서 유럽 전역에 공급될 장갑 구조물을 제조하고 전자 시스템의 최종 조립을 담당할 예정이다. 엘 탈레론은 과거 듀로 펠게라(Duro Felguera) 소유의 중공업 공장지대였으나, 현재는 인드라 그룹의 핵심 방산 시설로 변모했다.
스페인이 히혼의 엘 탈레론을 생산 거점으로 선택한 것은 자주포의 유지보수를 스페인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할 수 있어서다. 현지생산하게 되면 스페인은 더 이상 부품을 보내거나 외국 기술자가 기지에 와서 중요한 업그레이드를 수행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또 수백 개의 고숙련 일자리 창출과 지역 금속 가공 공급망 강화는 기술 전문성을 국내에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히혼 공장에서 자주포를 생산할 경우 나토(NATO) 인증으로 유럽의 제3국 수출도 유리해진다. 인드라는 K9 자주포 미사일이 나토의 모든 보안과 통신 표준을 충족하도록 보장하는 기술 패키지를 개발하고 있다. 히혼 공장에서 장비를 구매하거나 유지 보수함으로써 유럽 군대는 유럽 연합 방위 기금을 활용할 수 있고, 자국 시스템이 나토 네트워크와 기술적 마찰 없이 통신할 수 있도록 보장받을 수 있다.
총 예산 45억 유로(약 7조8300억원)에서 최대 67억 유로(약 11조6500억원)에 달하는 스페인 자주포 현대화 사업은 스페인 육군과 해병대를 위한 자주포 128문을 필두로 탄약 수송차 128대, 구난차 21대, 지휘통제차 59대까지 스페인 포병 전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K9 플랫폼으로 채우는 초대형 프로젝트이다. 155mm 자주포인 K9 썬더 128문을 도입해 노후화된 전력을 대체하고 스페인을 유럽 시장의 주요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것을 핵심으로 오는 2034년까지 인도 완료를 목표로 한다.
독일 제너럴 다이내믹스 유럽 랜드 시스템스(GDELS)가 스페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며 제동이 걸렸지만 스페인이 한화에어로의 K9 자주포 선택을 고수해 수출에 탄력이 붙는다. <본보 2026년 1월 6일자 참고 : 한화, 스페인 자주포사업 수주 '걸림돌'….정부 자금 지원 두고 현지기업 '알력 다툼'>
스페인은 K9 자주포로 디지털 접근성과 정확성을 향상시킨다는 방침이다. K9 자주포는 스페인 자주포의 주력 기종이었던 M109 A5E와 비교했을 때 놀라운 자동화 기술을 자랑한다. M109 A5E는 포수가 수동으로 계산하고 상당한 육체적 노력을 들여 탄약을 장전해야 했다. 다중 포격 동시 타격(MRSI) 기능을 도입한 K9 자주포는 서로 다른 고도각으로 3발의 포탄을 연달아 발사할 수 있다. 3발의 포탄이 정확히 동시에 표적에 명중하여 적의 방어망을 압도하고, 유도 포탄을 사용하면 사거리가 50km를 초과해 스페인군은 적의 반포 사격에 노출되지 않고 적진 깊숙이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또 인드라가 개발한 사격 관리 소프트웨어 탈로스(TALOS)가 자주포와 통합돼 탈로스가 두뇌 역할을 할 수 있다. 탈로스 덕분에 자주포는 정찰 드론이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표적을 탐지하면 즉시 좌표를 K9E로 전송할 수 있다. 시스템이 정보를 처리하면 포가 자동으로 위치를 잡고 조준하여 거의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해진다. 국가 지휘통제 시스템과의 통합 능력은 스페인이 이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기술 주권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