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정예린 기자]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가 사우디아라비아 차기 호위함 도입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 맞붙고 있는 독일·한국 조선·방산 진영의 경쟁 구도가 사우디 호위함 수주전으로까지 이어지면서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중동 시장에서 또 한번 TKMS와 정면 승부를 벌이게 됐다.
9일 중동지역 경제·산업 조사기관 택티컬 리포트(Tactical Report)에 따르면 TKMS는 최근 사우디 정부에 차기 호위함 도입과 관련한 제안을 전달했다. 사우디 측은 해당 제안에 대한 초기 평가와 함께 검토 중인 다른 호위함 대안과 이 사업을 총괄하는 관계 당국자 라인에서 검토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와 TKMS 간 접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사우디 왕립해군(RSNF)이 TKMS와 호위함 도입 가능성을 놓고 예비 논의를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나온 바 있다. 당시에는 도입 가능성을 탐색하는 단계에 머물렀지만, 이번 제안 전달로 협의가 실제 사업 제안 단계로 넘어갔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TKMS가 사우디 측에 제안한 함형은 모듈형 다목적 호위함 '메코(MEKO) A200'이다. MEKO A200은 국가별 요구에 맞춰 무장·센서·전투체계를 유연하게 구성할 수 있는 설계를 채택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알제리·이집트 등에서 운용 실적을 확보한 플랫폼이다.
MEKO A200은 전장 약 121m, 만재 배수량 약 3950톤(t)급 규모로, CODAG-WARP 추진체계를 적용해 고속 기동과 장거리 항속을 동시에 확보했다. 헬기 운용과 대잠·대공·대함 임무 수행을 전제로 설계돼 연안과 원해 작전을 모두 고려한 다목적 운용이 가능하도록 구성됐다.
TKMS는 사우디 수출 제안과 동시에 독일 내수 사업에서도 MEKO A200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지난 3일에는 독일 국방부 조달청(BAAINBw)과 MEKO A200 DEU 사업 사전 합의(preliminary agreement)를 체결하고, 자재 조달과 강재 절단 등 준비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해당 사전 합의는 정식 건조 계약 체결 전 단계지만, 독일 해군용 MEKO A200이 실제 건조를 전제로 한 실무 단계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수출 협상에서 레퍼런스로 활용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TKMS는 자국 해군 사업과 수출 사업을 병행 추진하며 공급 일정 관리와 장기 운용 지원 역량을 함께 강조하고 있다.
사우디는 해군 현대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중형급 호위함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홍해·아라비아만 해상 교통로 보호와 에너지 인프라 방어, 연합작전 수행 능력 강화를 목표로 전력 구조 개편을 진행하는 동시에 ‘비전 2030’에 따라 주요 방산 사업에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 비율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사우디가 요구하는 조건이 ‘함정 도입’에 그치지 않고 현지 생산·공급망·정비 체계까지 포함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경쟁 구도는 제안 단계부터 사업 구조 설계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TKMS의 제안 전달과 맞물려 한국 조선·방산 기업도 현지화·산업협력 카드를 전면에 내세운 수주 전략을 동시에 가동하고 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지난 8일(현지시간)부터 오는 12일까지 닷새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리는 ‘2026 국제방산전시회(WDS)’에 참가해 사우디 해군 현대화 사업을 겨냥한 수주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사우디 국방·해군 관계자들이 대거 현장을 찾는 행사 특성상 양사는 전시를 계기로 현지 협의 접점을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사우디 요구 조건에 맞춘 6000t급 수출형 호위함 ‘HDF-6000’을 전면에 내세웠다. 세종대왕급·정조대왕급 구축함을 잇달아 건조한 경험을 토대로 성능과 탑재 장비를 확장한 수출형 모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사우디 해군 전력 구조에 적용 가능한 주력 플랫폼으로 제시하고 있다.
함정 제안과 함께 현지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HD한국조선해양과 사우디 국영기업 아람코가 공동 투자해 설립한 IMI 조선소를 활용, 호위함 수주 시 현지 건조 비율을 단계적으로 높이는 방안을 제안한다. 전시 기간 사우디 국방부·해군 관계자들을 상대로 설계·건조·사업관리 역량과 현지 건조 및 유지·정비(MRO) 경험을 결합한 사업 구조를 제시하고, 사우디 투자부 및 LIG넥스원·STX엔진 등 국내 12개 기업과 체결한 현지 공급망 구축 MOU도 함께 소개한다.
한화는 한화오션·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 등 방산 3사가 통합 전시관을 구성해 해군 전력과 연계된 전투체계·센서·운용 지원 체계를 함께 제시한다. 계열사 협업 구조를 통해 함정 플랫폼에 전투체계와 운용 지원을 결합한 통합 패키지 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화오션은 장보고-III 배치-II 잠수함과 맞춤형 잠수함 기지 모델, 수상함·무인수상정 등을 함께 제시하며 해군 전력 포트폴리오를 소개한다. 함정 플랫폼 공급에 그치지 않고 산업 기반 구축과 장기 운용·정비를 포함한 사업 구조를 중심으로 사우디 해군 현대화 사업에 적용 가능한 패키지를 제안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