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오소영 기자] "유명한 한의사 이야기예요. 하도 용해 1년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도대체 뭐가 다를까 보니, 이 의사는 환자의 마음을 얻기 전까지 절대 치료를 하지 않아요. 어머니가 아들이랑 같이 왔는데, 얼굴을 보니 안색이 좋지 않아요. 아들한테 억지로 끌려온 것처럼 보여요. 그럼 한의사는 어머니의 마음부터 돌려놓으려고 해요. 그래도 안 되면 먼저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혹시 오늘 나눈 이야기가 이해되면 다시 오세요'라고 말씀드리죠. 경영도 마찬가집니다. 직원의 마음을 얻기 전까지 리더는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됩니다."
권영수 전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이 신간 '당신이 잘되길 바랍니다'를 출간한다. 내달 3일 출간을 앞두고 더구루와 만나 책에 실린 에피소드를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경영이란 곧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신간의 부제인 '사람을 보고 길을 찾은 리더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당신이 잘되길 바랍니다'는 45년 LG맨인 권 전 부회장의 인생 기록이다. 사원 시절부터 최고경영자(CEO)에 이르기까지, 디스플레이와 통신, 배터리 등 다양한 산업 현장을 넘나들며 쌓은 경험과 철학을 담았다.
권 전 부회장은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2007년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에서 처음 CEO로 부임한 순간을 꼽았다. LG필립스LCD는 2006년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가격의 급락 여파로 8000억원대 적자를 냈다. 대수술이 필요하던 때 권 전 부회장이 등판했다. 그는 "그야말로 '멘붕'이었다"며 "하루는 집 비밀번호를 잊어버렸고 어떤 아파트인지, 빌라인지조차 기억이 안 났다"고 회고했다.
직원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재무통인 권 전 부회장의 선임을 구조조정의 신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직원들을 '배려'하겠다는 권 전 부회장의 발언을 '목을 베러 왔다'고 왜곡하기도 했다. 권 전 부회장은 "당신들이 제일 중요하며 당신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진심을 (직원들이) 먼저 느끼게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며 "마음을 얻지 않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해도 오해를 빚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권 전 부회장은 파주와 구미 공장에 팀장을 파견하고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세심히 살폈다. 직원의 고충을 가장 잘 알고있는 노조와도 직접 소통하려 했다. 인사팀은 윗선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어 현장의 고충을 필터링해 전달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CEO 부임 후 7~8개월 동안 직원들의 마음을 얻는 데 매달리자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권 전 부회장이 선언한 '배려 경영'은 그의 경영 행보 곳곳에 녹아났다. 2021년 LG에너지솔루션 대표로 취임한 후 오창 공장과 대전 연구소로 주1회 이상 출근하고 현장 직원들과 꾸준히 소통한 행보는 유명하다.
LG필립스LCD 시절부터 시작된 '배려 경영'은 현재진행형이다. 기자가 방문했던 권 전 부회장의 사무실 책장 한켠에는 '배려'라고 적힌 액자가 놓여있었다.
LG유플러스로 옮긴 후에도 권 전 부회장의 시선은 '사람'을 향했다. 권 전 부회장은 재임 당시 넷플릭스와 제휴를 추진했다. 넷플릭스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공룡'이었다. 세계 유료 가입자가 1억 명을 돌파해 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1000억 달러(약 140조원)를 넘었다.
권 전 부회장은 넷플릭스와 제휴를 추진한 건 '만년 3등'이라는 인식을 깨기 위함이었다고 부연했다. 그는 "직원들에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며 "(성공) 확률이 낮다고 봤지만 '그래도 우리가 높은 목표를 갖고 한번 뛰어보자, 성공하면 그 자체가 조직에 어마어마한 자신감을 줄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콧대 높은' 넷플릭스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었을까. 권 전 부회장은 "철저히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미팅이 끝나면 '넷플릭스 직원들끼리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될까' 직원들과 논의했다"며 "그들이 어떤 기분인지에 따라 우리가 다음에 어떤 말을 할지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늘 '사람'이 먼저였던 권 전 부회장은 이번 책을 통해 '배려의 시선'을 조직 밖으로 넓혔다. 신간의 제목인 '당신이 잘되길 바랍니다'는 권 전 부회장의 인생 철학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는 "과거에는 '당신'이 내가 아는 사람에 국한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여생은 타인을 돕고 타인이 잘 되도록 힘쓰는 데 바치고 싶다"고 소망을 내비쳤다.
마지막으로 권 전 부회장은 직장에 대한 직원들의 효능감은 '리더'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좋은 리더십, 좋은 조직 문화가 있는 회사에선 다들 임원까지 오래 다니고 싶어한다"며 "리더와 조직 문화가 변화해야 직원들의 생각도 바뀔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