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정예린 기자] SK㈜가 미국 실리콘 음극재 기업 '그룹14 테크놀로지(Group14 Technologies, 이하 그룹14)'와 합작으로 운영해온 경북 상주 공장 지분을 모두 넘기며 경영권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그룹14가 단독 운영 체제를 발판 삼아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룹14는 20일(현지시간) SK㈜가 보유하고 있던 합작사 'SK머티리얼즈 그룹14'의 상주 배터리 활성소재 공장(BAM-3) 지분 75%를 인수해 100% 경영권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양사는 합작사 설립 4년 만에 파트너십을 정리하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
SK㈜는 합작사 지분은 정리했지만, 최근 마무리된 그룹14의 4억6300만 달러 규모 시리즈D 펀딩 라운드에 리드 투자자로 참여하며 전략적 협력 관계는 유지하고 있다. 이번 라운드에는 포르쉐 인베스트먼트, 중국 배터리 기업 ATL, 마이크로소프트(MS) 기후혁신펀드 등 기존 투자자들도 참여했다. 그룹14는 조달한 자금을 미국과 한국에서 자체 개발한 실리콘 음극재 'SCC55' 생산 능력 확충에 투입할 계획이다.
SK㈜가 공장 경영권을 넘기고 투자자로만 남은 배경에는 위험 분산과 지주사 전략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대규모 설비 투자와 기술 상용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피하면서도, 성장 잠재력이 큰 그룹14 지분을 통해 재무적 수익을 추구하려는 포지셔닝으로 풀이된다. 특히 배터리 밸류체인에서 SK온이 완제품 제조에 집중하는 만큼, 소재 분야에서는 직접 운영보다 투자와 파트너십을 통한 포트폴리오 다변화 전략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그룹14와 SK의 인연은 SK㈜ 머티리얼즈가 SK㈜와 합병하기 전인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합병 전 SK머티리얼즈가 그룹14에 13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듬해 합작사 'SK머티리얼즈 그룹14'를 설립하고 8500억원을 투입해 상주 공장을 완공했다. 공장 지분은 SK㈜가 75%, 그룹14가 25%를 보유했다. 해당 공장은 지난해 9월부터 10GWh 규모 설비를 가동해 SCC55를 생산, ATL을 비롯한 고객사에 납품하고 있다.
그룹14는 2015년 설립된 배터리 소재 전문 기업이다. 주력 제품 SCC55는 배터리 음극재에 기존 흑연 대신 실리콘을 적용한 소재로, 흑연 대비 4배 이상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어 차세대 배터리 핵심 기술로 꼽힌다. 특히 SCC55는 배터리 용량을 5배, 에너지 밀도를 최대 50%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 워싱턴주 우딘빌과 모지스레이크에서 각각 BAM-1, BAM-2 공장을 운영 중이다. 독일에서는 차세대 에너지 저장 기술의 핵심 전구체인 실란가스 공장을 건설하며 유럽 내 생산 인프라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기술력을 기반으로 SK㈜, 포르쉐, ATL 외에도 일본 쇼와덴코, 독일 바스프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시리즈D 라운드를 포함해 지금까지 총 10억 달러 이상을 확보했다.
릭 루에베(Rick Luebbe) 그룹14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성과는 그룹14의 중요한 순간이자, 우리의 실리콘 배터리 소재가 이미 고성능 에너지 저장의 미래를 이끌고 있다는 명확한 신호"라며 "우리는 지역별 배터리 공급망을 강화하고 고객들을 글로벌 무역 불확실성으로부터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