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정예린 기자] "K2 전차 동유럽 수출은 대한민국 국방·민간 과학기술의 선진화와 더 큰 세계화로의 시작이다."
이정엽 현대로템 디펜스솔루션사업본부장(부사장)은 지난 14일 경남 창원 현대로템 창원공장에서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K2 전차 수출과 유·무인 복합 체계를 기반으로 2035년 글로벌 지상무기체계 5위 달성을 목표로 성장해 나갈 계획"이라며 미래 비전을 강조했다.
이어 "2008년 개발 이후 10여 년간 한반도 안보를 책임졌던 우리 순수 국산 전차 1호가 이제 8000km 떨어진 북유럽 한복판에서도 새로운 평화를 지키는 방패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며 "이번 수출은 단순한 제품 판매를 넘어 대한민국과 폴란드 간 중장기 국방 협업을 공고히 하는 계기"라고 덧붙였다.
폴란드 K2 수출 사업은 2022년 1000대 총괄 계약 체결 이후 2차 계약이 완료됐으며, 오는 2027년 3차 계약 체결과 함께 나머지 물량도 2년 단위로 순차적으로 계약될 예정이다. 최근 유럽 내 재무장과 연대 강화, K-방산에 대한 견제 등 변화가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현대로템은 이에 흔들림 없이 대응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인공지능(AI) 기반 표적 탐지와 전장 환경 인식 기술을 전차와 차륜형 장갑차 등 미래형 플랫폼에 탑재하는 선행 연구개발(R&D)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다.
이 부사장은 "K2 폴란드 수출을 기반으로 루마니아, 중동 등으로 수출 확대가 이어질 것으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현대로템은 세계의 벽을 뛰어넘는 독보적 기술과 품질 확보에 집중하고, 국익 창출과 K-방산 글로벌 4대 강국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글로벌 시장 확대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 K2 폴란드 수출, K-방산 새 역사 쓰다
현대로템이 폴란드와 체결한 K2 전차 2차 계약 규모는 약 65억 달러(약 9조원)에 달한다. K2 갭필러(GF) 전차 116대, K2 폴란드형(PL) 전차 64대, 구난·개척·교량 전차 등 K2 기반 계열 전차 81대를 포함해 총 261대를 납품한다.
이번 2차 계약은 1차 계약과 달리 현지화와 유지·보수·정비(MRO) 기술 이전이 핵심이다. K2 GF 전차 116대는 모두 한국에서 생산되며, K2 PL 전차 64대 중 3대는 국내에서 완전 생산되고 나머지는 부품 형태로 폴란드 국영 방산업체 'PGZ' 자회사 '부마르'에 제공돼 현지에서 조립된다. 계열전차 3종 81대도 일부는 국내에서 제작되지만 대부분은 부품 형태로 공급돼 폴란드에서 최종 생산 과정을 거친다.
조립된 K2전차는 부마르에서 현대로템으로 납품되고, 현대로템이 폴란드군에 최종 공급하는 구조다. 부마르가 현대로템의 하청 협력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다만 사격통제 제어장치와 엔진 등 핵심 부품과 기술은 계속 국내에서 생산되며, 현지화할 품목과 시점은 폴란드와 협의 후 단계별로 결정될 예정이다.
K2 PL 전차는 미래 전장 환경에 대비해 능동방호장치, 12.7mm 원격무장장치(RCWS), 드론 제머 장치, 수동 장갑 강화, 냉방 장치 등 승무원 운용 편의성을 개선했다. 계열전차 3종은 구난, 개척, 교량 기능에 특화돼 있다. 구난전차는 포탑과 파워팩 이양용 크레인, 고장 전차 구조용 윈치·도저를 갖추고, 개척전차는 지뢰제거 장치와 자기감응지뢰 무력화 장비, 표식 장치를 장착한다. 교량전차는 10~15톤(t) 이상 차량이 통과 가능한 교량을 탑재한다.
1차 계약 성과도 눈부시다. 2022년부터 최근까지 납품된 133대의 K2 GF 전차는 95% 이상의 가동률을 기록하며 폴란드군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국내 시험장에서는 기준상 2km 표적만 확인 가능했지만, 현지 시험에서는 5km 거리에서도 정확히 명중하며 우수한 전투 성능을 입증했다. 1차 계약 물량 180대 중 47대만 남겨둔 상태이며, 연내 차질 없이 납품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현대로템은 ISS(In-Service-Support, 근접 지원) 조직을 통해 폴란드군이 K2를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기술직 엔지니어와 현지 채용 폴란드 기술진이 16기계화사단, 9여단, 15여단, 20여단 등 각 부대와 기지에 배치돼 부품 점검, 정비, 운용 교육 등 밀착 지원 활동을 수행한다.
최우석 현대로템 폴란드PM1팀 팀장은 "ISS의 가장 큰 장점은 디지털화 된 K2 전차의 어떤 부품이 고장나도 차량 상태를 바로 바로 알수 있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라며 "기동성, 사격 명중률 등에 대해 극찬을 받았다”고 전했다.
국내 731개 협력사도 폴란드 수출로 성장 모멘텀을 확보했다. K2 전차 개발 초기부터 참여한 협력사들은 국산화율 90%를 유지하며 안정적 공급망을 구축했고, 수출 확대에 따라 발주량이 크게 증가했다. 유기압 현수장치를 제작하는 금아하이드파워는 2021년 대비 연내 매출이 260%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 K2 전차 출격 카운트다운…창원 공장 생산 라인 '분주'
이날 방문한 방산 1공장은 폴란드향 K2 전차 갭필러 1차 계약 물량 생산으로 분주했다. 한낮 30도를 훌쩍 넘는 열기 속에서도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현대로템은 국내 육군 3차 물량 생산을 마친 뒤 현재 폴란드 공급 체제로 전환한 상태다. 조립 현장은 2인 1조로 운영된다. 전차 구조물이 이송장치를 따라 이동하며 차체에 해치, 연막탄 장치, 사격통제시스템 등 핵심 부품이 차례로 탑재된다.
공장 내부에는 '자주검사 정착화, 무결점 제품 실현'이라는 슬로건이 붙어 있었고, 정확한 납기일 준수가 직원들의 가장 큰 자부심이었다. 현장을 안내한 김미정 현대로템 총무팀 책임매니저는 "K2 공급 물량이 대폭 늘었음에도 육군 3차부터 폴란드 1차까지 납품 지연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며 "대규모 시설 구축을 추가하지 않아도 기존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고 레이아웃 조정해 효율적으로 운영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생산량은 보안 사항이지만, 부품 발주가 끝나고 셋업을 마치면 전차 한 대를 생산하는 데 약 10개월이 걸린다. 동시에 100대 이상 생산도 가능하지만 이는 물량과 계약 일정에 따라 달라진다. 120mm 주포는 현대위아에서, 1500마력급 엔진은 HD현대인프라코어에서 조달해 장착한다.
창원공장은 1976년 방산업체로 지정된 후 1978년 본격 가동됐으며, K1 전차(1985년)와 디지털화 K2 전차(2008년)를 개발했다. 현재 방산 1·3공장에서 K2 전차를, 2공장에서 수륜형 장갑차를 생산하고 있다. 도장·세정 공장은 별도로 운영된다.
김 책임매니저는 "40년 전 도입된 전차도 여전히 운용 가능하고 부품을 자체 개발해 단종 없이 유지되는 MRO 체계가 매우 중요하다"며 "폴란드군도 이를 높이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2공장에서는 차륜형 장갑차가 한창 제작 중이었다. 기존 육군 장비가 궤도형이었다면, 새로운 장갑차는 도시화된 환경과 기동성을 고려해 시속 100km 이상 이동 가능한 장갑차로 개발됐다. 내부에는 냉난방 장치도 갖춰져 있다.

◇ 굉음 속 질주하는 K2, 시범 주행으로 성능 입증
방산2공장 옆 전차 전용 주행시험장에서는 폴란드 국기가 부착된 K2 전차의 시범 주행이 진행됐다. 평지와 경사로, 다양한 험지로 구성된 코스를 따라 전차가 움직일 때, 1500마력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굉음과 검은 연기가 뒤섞이며 긴장감이 감돌았다. 평지에서는 시속 70km, 야지에서는 50km까지 주행 가능하지만, 이날 승무원들은 안전을 위해 60~65km 속도로 차량을 운행했다.
이번 시범 주행은 포격 시험이 아닌 기동 성능과 안정성 점검에 초점이 맞춰졌다. K2 전차는 '피봇(pivot)' 기능으로 차체가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할 수 있으며, 포탑 역시 360도 회전이 가능해 차체를 돌리면서도 포탑을 정확히 조준할 수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끈 장면은 K2 전차의 자랑, 능동형 현수장치(ISU)의 실제 작동이었다. 전차가 자세를 낮추면서도 흔들림 없이 조준 사격을 하는 모습은 고속 기동과 험지 환경에서도 정밀한 사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기자가 차체 근처를 지켜보는 동안 포탑과 차체가 일체화된 듯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시속 60km 이상으로 주행하는 동안 해치 위에 선 승무원도 흔들림 없이 서 있었고, 차체 회전과 피봇 기능 사용에도 상단 포탑과 해치 쪽 승무원의 안정성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날 경사면 제동 테스트는 진행되지 않았지만, K2 전차는 군 기준에 맞춰 경사에서 브레이크를 밟아도 일정 거리 이상 밀리지 않는 제동 성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