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김예지 기자] 현대자동차가 '제2의 홈타운'으로 공을 들여온 인도 자동차 시장에서 거센 풍랑을 맞고 있다. 수십 년간 굳건히 지켜온 점유율 2위 자리를 로컬 업체들에게 내준 데 이어, 미래 먹거리인 전기차(EV) 시장에서조차 베트남 신생 업체 빈패스트(VinFast)에 추월당했다.
31일 업계와 현지 외신 등에 따르면 빈패스트는 올해 12월 인도 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를 제치고 전기차 판매 부문 4위에 올랐다. 이는 빈패스트가 지난 9월 인도 시장에 첫 모델을 인도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거둔 성과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공룡'인 현대차그룹을 순위에서 밀어냈다는 점에서 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현대차·기아에게 더욱 뼈아픈 대목은 전체 승용차 시장에서의 위상 변화다. 2025년 인도 시장 총결산 결과, 현대차는 지난 1996년 인도 진출 이후 약 29년 만에 처음으로 '부동의 2위' 자리를 박탈당하며 4위로 주저앉았다. 실제 11월 판매 지표를 살펴보면 현대차의 위기는 더욱 뚜렷하다. 타타 모터스(5만 7436대)와 마힌드라(5만 6336대)가 전년 대비 20% 이상의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하며 2, 3위 자리를 굳히는 동안, 현대차는 단 4.3% 성장에 그친 5만 340대를 판매하며 4위로 밀려났다. 현대차가 인도 시장에서 로컬 업체들에 밀려 2위 자리를 내준 것은 현지 생산을 시작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사태는 사실상 예견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1월 빈패스트는 인도 타밀나두주에 20억 달러(약 2조 6400억원) 규모의 초대형 투자를 발표하며 현지 생산 공장 착공을 선언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중국 BYD가 인도 정부의 보안 규제로 진출이 막힌 사이, 빈패스트가 그 빈자리를 빠르게 파고들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당시 인도 전기차 시장의 약 70%가 1만 5000달러(당시 약 1980만원) 미만의 저가 모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가 프리미엄 전략에 집중하며 보급형 모델 출시 타이밍을 놓친 것이 결정적 패착으로 풀이된다.
빈패스트의 약진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의 결과물이다. 빈패스트는 타밀나두 생산 거점을 기반으로 VF6, VF7 등 소형 및 준중형 전기 SUV 라인업을 파격적인 가격에 내놓았다. 특히 배터리 구독 서비스를 통해 초기 구매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 실용성을 중시하는 인도 소비자들을 공략했다. 반면 현대차는 주력 모델인 크레타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된 가운데, 마힌드라의 스콜피오나 타타의 넥손 등 강력한 SUV 라인업에 점유율을 양쪽에서 흡수당하며 시장 주도권을 내줬다.
업계관계자는 "현대차가 인도 법인 IPO 등으로 자금력을 확보하고는 있으나, 단순한 브랜드 인지도가 아닌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과 혁신적인 EV 라인업의 전면 재검토 없이는 인도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