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김예지 기자] 대한항공이 미국의 전기 수직이착륙기(eVTOL) 개발업체 아처 에비에이션(Archer Aviation, 이하 아처)과 미래항공교통(AAM) 모델 공동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대한항공은 아처가 개발한 eVTOL '미드나이트(Midnight)'를 국내 시장에 도입, 국방 분야를 시작으로 AAM 기술을 다양하게 확대 적용할 수 있는 모델로 공동 개발한다. 양사가 개발한 eVTOL 모델은 필요 물자의 신속한 보급 및 인력 수송 등 임무에 우선 활용할 계획이다.
21일 아처에 따르면 이번 파트너십은 단순 기체 구매를 넘어 한국 내 eVTOL 상용화를 위한 전반적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처는 대한항공의 항공정비(MRO) 및 운항 경험을 기반으로 한국을 차세대 항공 모빌리티 아시아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대한항공과 아처는 앞으로 정부 활용 사례를 시작으로 △상업적 운항 △공공 서비스 △도심 교통 대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드나이트 기체의 활용 가능성을 모색한다.
특히 대한항공은 아처로부터 최대 100대의 항공기 도입도 검토한다. 아직 구체적인 상업 계약 및 납품 일정 등은 정해진 바 없지만 추후 별도 협의를 통해 확정할 계획이다.
아처는 현재 미국 내 두 개의 생산 시설에서 시제 기체 6대를 제작 중이며, 상용화를 위한 미 연방항공청(FAA) 인증 절차도 병행하고 있다.
아처가 개발 중인 미드나이트는 조종사 1명과 승객 4명을 태울 수 있으며, 기존 자동차로 60~90분 소요되는 단거리 이동을 10~20분 수준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친환경 전기 추진, 저소음, 짧은 충전시간과 고빈도 운항이 가능한 점이 특징이다. 아처는 최근 캘리포니아 국제에어쇼에서 약 5만 명의 관람객 앞에서 시연 비행을 진행했으며, 고도 1만 피트에서 약 88km를 비행하는 성과도 거뒀다.
대한항공은 이번 협력이 국내 항공우주산업 경쟁력 강화는 물론, 미래 교통 시스템 선점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임진규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장은 "아처의 기술력과 대한항공의 반세기에 걸친 항공 정비·제조 경험을 결합해, 대한민국 내 차세대 항공 모빌리티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아처 역시 이번 협력을 통해 기술력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 확장에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담 골드스타인(Adam Goldstein) CEO는 "대한항공의 항공우주 산업 전문성과 전략적 비전은 아처에게 이상적인 파트너"라며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항공 시장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이번 협업은 대한항공이 추진 중인 ‘하늘길 혁신’ 전략의 연장선으로도 해석된다. 앞서 대한항공은 스웨덴 항공 데이터 스타트업 윙비츠(Wingbits)와 협력해 블록체인 기반 ADS-B 감시 데이터를 자체 공역 통합 플랫폼 'ACROSS'와 연동하는 기술 실증에 착수한 바 있다. 해당 기술은 eVTOL과 드론 등 저고도 항공기의 실시간 위치 추적, 충돌 방지, 공역 통합 운용에 활용될 전망이다.
또한 대한항공은 지난 2023년 현대차그룹 산하 AAM 전문 기업 슈퍼널(Supernal)과도 협력에 나선 바 있다. 슈퍼널은 오는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eVTOL 기체 'S-A2'를 개발 중이며, 대한항공은 운항·정비 역량을 바탕으로 해당 기체의 안정적 상용화를 지원 중이다.
한편 아처는 최근 미국 방산 eVTOL 시장 진출을 위한 움직임도 강화하고 있다. 한화시스템 관계사 오버에어(Overair)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인수하고 핵심 인력을 확보했으며, 복합재 전문기업 MCC의 제조 시설도 함께 인수했다. 이를 통해 군사용 하이브리드 VTOL 항공기 개발 역량을 자사 내부에 흡수한 상태다.
오버에어는 고효율·저소음 기술이 적용된 eVTOL '버터플라이(Butterfly)'를 개발했지만, 지속 적자로 인해 한화시스템이 투자 지분을 전액 상각한 바 있다. 아처는 해당 기술 자산을 바탕으로 미 국방 분야 참여 요건을 확보하고, 방산 eVTOL 시장 진입 기반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