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김명은 기자] 이재명 정부가 민생경제 회복을 기치로 '물가 잡기'에 나서면서 느닷없이 '라면값' 논쟁이 뜨겁다. 이재명 대통령이 앞서 지난 9일 열린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라면 한 개에 2000원도 한다는데 진짜예요?"라고 질문을 던진 게 시발점이 됐다.
이 대통령의 '라면값 2000원' 발언 등이 나온 후 정부가 식품 물가 통제를 시사하면서 라면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일부 가격대가 높은 프리미엄 제품이 있긴 하지만 자신들이 물가 급등의 주범인 듯 대통령이 라면을 콕 집어 언급하자 억울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2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로 5개월 만에 1%대로 내려왔다. 하지만 가공식품 물가는 4.1%를 기록하며 두 달째 4%대에서 고공 행진했다. 라면은 1년 전보다 6.2% 올라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1.9%)과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4.1%)을 뛰어넘었다. 초콜릿(22.1%) 비스킷(9.6%) 주스(8.8%) 커피(8.4%) 냉동식품(6.9%) 등과 함께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시장에서는 편의점을 중심으로 이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2000원 안팎의 라면이 실제로 유통되고 있다. 업체별로 주로 대용량 컵라면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다. 편의점을 기준으로 농심 생생우동 큰컵 2600원, 삼양식품 탱글 청크토마토 파스타 큰컵 2500원, 오뚜기 짜슐랭 큰컵 2000원, 오뚜기 참깨라면 큰컵 1800원 등에 판매되고 있다. 봉지 제품 중에는 삼양식품 까르보불닭볶음면과 농심 배홍동쫄쫄면이 1700원으로 비교적 높은 가격대를 보이고 있다.
전통적인 국물 봉지라면 대부분은 그보다 낮은 1000원대 중반 가격이다.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라면 번들(묶음) 제품의 상당수가 4000원 안팎의 가격을 보이고 있다. 신라면 등 인기 제품의 개당 가격이 1000원대를 넘어서진 않는 구조다.
라면을 포함한 식품업계는 원부자재와 인건비 등이 오른 데다 환율 급등으로 원재료 수입 단가가 높아졌다는 이유를 들어 최근 6개월 사이 제품 가격을 올렸다.
문제는 물가 위기 상황에서 유독 라면값이 자주 언급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라면 업계는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정부에서 '물가 잡기'에 나설 때 예외 없이 등장하는 제품이 라면과 소주다. 이들이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시절인 지난 2023년 6월에도 당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방송에 출연해 "기업들이 지난해 9~10월 라면값을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면서 '라면값 인하' 압박에 나선 바 있다. 그에 앞서 같은해 2월에는 '소줏값 인하' 발언을 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식품업체들은 주요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환율 변동과 국제 원자재 가격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내수 비중이 큰 기업은 실적 부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일각에선 라면값을 정부가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가격 조정을 압박하는 분위기에 불편함을 토로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자유 시장경제 체제에서 가격은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하지만 역대 정부는 너 나 할 것 없이 민생경제 회복을 이유로 물가 잡기에 나섰고, 매번 라면값은 1순위로 소환됐다"면서 "서민들의 팍팍한 살림살이를 외면할 수 없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품목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려는 이른바 '관치 물가관리'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라면 업계는 대통령의 공개적인 '구두 압박'에도 당장 라면값을 조정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라면 생산업체 관계자는 "라면이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기 때문에 물가와 관련해 최우선 거론돼 왔고, 또 그런 점에서 그동안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해 왔다"면서 "원가 부담을 고려할 때 지금 당장 단칼에 가격을 인하하거나 조정하긴 힘들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