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정예린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향후 4년간 11조원을 투입해 방산을 넘어 조선·해양·에너지 분야까지 아우르는 글로벌 톱티어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북미·유럽·중동 등 고성장 시장을 중심으로 현지화를 강화해 오는 2035년 매출 70조원, 영업이익 10조원 달성을 노린다.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 총괄사장은 8일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열린 '미래 비전 설명회'에서 "유상증자 발표 당시 투자 규모를 3조6000억원이라고 밝혔지만 오는 2028년까지 4년 동안 11조원 플러스 알파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2023년부터 2028년까지 1·2단계로 나눴을 때 1단계 2023~2024년에는 조선과 에너지 분야 투자에 집중했다면 2025~2028년은 방산 투자에 집중할 것"이라며 "현지화를 통해 방산 사업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동시에 조선·해양·에너지 분야에서도 매의 눈으로 계속 기회를 찾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투자 분야는 방산과 조선·해양·에너지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매출 증대를 위한 해외 투자(6조2700억원) △신규 시장 진출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1조5600억원) △지상방산 인프라 투자(2조2900억원) △항공우주산업 인프라 투자(9500억원) 등으로 배정했다.
유럽·중동·북미 등 글로벌 시장에서의 현지 생산·공급 능력 확대와 신기술 확보에 자금을 집중 투입한다. 방산 분야에서는 △유럽 현지 생산기지·합작법인(JV) △사우디 국가방위부 JV △미국 탄약 스마트팩토리 등을 구축하고 수출형 지상방지와 유도탄을 개발한다. 항공엔진 생산설비와 우주발사체 인프라 강화에도 투자한다. 조선·에너지 관련 친환경 선박·해운 인프라를 확보하고, 북미 중심 액화천연가스(LNG)·원유 트레이딩 역량 강화를 위해 LNG 액화 터미널과 해상 풍력 설치선 사업 투자 등을 검토한다.
자금 조달은 자체 현금흐름과 외부 조달을 병행한다. 유상증자(3조6000억원)와 영업현금흐름 회사채 발행 및 금융권 차입(7조5000억원)을 제시했다. 이중 유상증자는 당초 지난달 발표한 3조6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방식 중심에서 일부 조정돼, 주주배정 유상증자(2조3000억원)와 제3자 배정 유상증자(1조3000억원) 등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눠 진행한다. 경영권 승계용이란 의혹과 주주가치를 떨어뜨린다는 비판에 직면한 데 따른 것이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에너지를 필두로 한화임팩트파트너스, 한화에너지싱가폴 등 에너지 3사가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한화에너지는 제3자 배정 물량을 할인 없이 인수할 예정이다. 이는 올 2월 한화오션 인수 대금으로 한화에너지에 지급됐던 1조3000억원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다시 되찾아오는 구조다. 반면 일반 주주들이 참여하는 주주배정 유상증자에는 약 15% 할인된 가격이 적용된다. 한화에너지 대주주가 희생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소액주주는 이득을 보게 되는 조치라는 게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 설명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작년 말 한화오션을 연결 편입하면서 한화시스템과 함께 방산·에너지·항공우주 3축을 완성했다. 올해 연결기준 매출 약 30조원, 영업이익 3조원이라는 전망치를 제시하며 시장 컨센서스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를 기반으로 오는 2035년까지 매출 70조원, 영업이익 10조원을 달성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다.
특히 자회사인 한화오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화오션을 2035년까지 연간 매출 25조원 이상 기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작년 한화오션 연간 매출 약 10조원 중 △8조원 상선 △1조원 해양 △1조원 특수선 등의 분야에서 발생했는데, 해양 매출을 상선과 비슷한 수준인 10조원까지 끌어올리고 특수선 매출도 5조원까지 늘린다는 구상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천문학적인 자금을 확보해 세계 각지에서 현지화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의 기회를 결코 놓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이후 유럽 각국이 국방 예산을 대폭 확대하면서 방위산업 투자가 과거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유럽 시장에서 비(非)유럽 기업으로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현지 기반 구축이 필수라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안 사장은 "현재 시장에는 많은 기회가 있지만, 유럽의 기존 방산업체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며 "불행히도 우리는 비유럽 기업이고, 이로 인해 분명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업체들은 폴란드 육군 관련 전차, 자주포, 미사일 시스템 등을 한국 업체들이 수주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실력으로는 따라잡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아예 외부 기업의 진입 자체를 막는 제도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럽연합(EU)은 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일정 비율을 넘지 않도록 제한하지만, 방위 분야에 한해서는 이 한도를 없앴다"며 "우리는 이것을 '한국 기업에 시장을 내주지 않겠다'는 유럽의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