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정예린 기자] 유럽연합(EU)이 자동차 부품에 사용되는 탄소 섬유를 '유해 물질'로 지정해 사용을 제한하는 방안을 공식 검토 중이다. 탄소섬유 규제가 현실화되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해온 일본 도레이는 물론 국내 주요 소재·자동차 기업들도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9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EU는 자동차에서 탄소섬유의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자동차 폐기 시 탄소섬유가 인체에 유해하고 재활용을 어렵게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유럽의회(EC) 환경·내부시장위원회는 지난 1월 발표한 '폐차 차량(ELV) 관리 및 순환성 요구에 관한 규정 개정안 초안'에서 탄소섬유를 납, 수은, 카드뮴, 6가 크롬 등 기존 유해물질과 함께 관리 대상에 포함시켰다. 해당 초안은 향후 EU 회원국에서 판매되는 차량에 탄소섬유를 사용할 경우, 특정 조건과 최대 허용 농도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제를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C는 탄소섬유가 폐기 과정에서 분해되며 공기 중으로 날리는 미세 섬유가 인체에 자극을 주거나 환경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차량 내 사용되는 탄소섬유는 대부분 수지와 복합된 형태로 재활용이 어렵다는 점에서 탄소섬유를 '재활용 저해 물질'로 분류했다.
닛케이는 유럽의 규제가 최종 확정될 경우 도레이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레이는 글로벌 탄소섬유 시장의 35~40%를 차지하며 유럽 내 자동차 부품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입지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 외 현대자동차그룹, HS효성첨단소재 등 관련 투자를 확대해온 국내 기업에도 연쇄적인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을 수소·전기차,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로보틱스 등 미래 모빌리티 핵심 소재로 활용하며 국내외에서 관련 특허를 다수 확보하고, 일본 도레이와 전략적 협력도 맺는 등 사업을 적극 확장해왔다. 실제로 산업용 착용 로봇 ‘엑스블 숄더’에 CFRP를 적용한 데 이어, 차량 경량화 부품 상용화와 복합소재 기술 공동 개발을 통해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HS효성첨단소재는 국내 유일의 탄소섬유 생산 기업으로, 전북 전주 공장을 중심으로 관련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회사는 2028년까지 약 1조 원을 투자해 현재 연 9000톤(t) 수준인 전주 공장의 생산능력을 연 2만4000t 규모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베트남에도 세 곳의 생산 거점을 구축 중이며, 이들 공장은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가동에 들어간다. 중국 장쑤성 쉬저우시 산하 신이시 경제개발구에도 탄소섬유 공장을 짓기 위해 6억1400만 달러를 투자했다.
탄소섬유는 탄소원소의 질량 함유율이 90% 이상인 고기능 소재로, 철보다 10배 강하고 알루미늄보다 가볍다. 뛰어난 내열성과 전기·열전도성으로 인해 우주항공, 방산, 건축, 자동차, 의료 등 다양한 산업에 필수적인 소재로 각광받는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츠앤마켓츠에 따르면 글로벌 탄소섬유 시장 규모는 오는 2027년 119억 달러, 2032년 217억 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