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루=정등용 기자] “양자컴퓨터 산업이 아직 초창기에 머물러 있지만 언젠가 AI(인공지능)와 GPU(그래픽처리장치)가 하는 역할을 대체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정현철 노르마 대표는 최근 서울 여의도 더구루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 같이 밝히며 양자컴퓨터 산업의 미래를 전망했다. AI와 GPU의 확대로 LLM(거대언어모델)과 챗GPT 같은 프로그램들의 전력량 소모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양자컴퓨터가 이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양자컴퓨터, 바이오부터 이차전지 개발까지 활용
양자컴퓨터는 얽힘(entanglement)이나 중첩(superposition) 같은 양자역학적인 현상을 활용해 자료를 처리하는 계산 기계를 말한다.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를 이용하는 최초의 기계로 기존 컴퓨터보다 빠르게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컴퓨터의 경우 전자가 있고 없음에 따라 0과 1로 나눈 비트로 정보를 처리한다면, 양자컴퓨터의 단위는 0과 1 상태가 중첩된 큐비트(qubit)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양자컴퓨터는 동시에 여러 연산을 처리, 슈퍼컴퓨터가 수백년 걸릴 암호 계산을 수초에 풀 수 있다.
활용 방법도 다양하다. 다양한 물질이 섞여 있는 용액 내부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예측하거나, 경제학에서 주가를 예측하는 정확도 역시 크게 높일 수 있다. 최근에는 바이오와 이차전지 분야에서 특히 주목 받고 있다.
정 대표는 “바이오 분야 중 신약 개발과 함께 이차전지 신물질 분야에서도 양자컴퓨터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며 “가장 최근에는 LLM 쪽으로도 활용을 고민하고 있는데 아직 양자컴퓨터 알고리즘이나 머신이 도달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활용 가능성은 높다”고 말했다.
◇노르마, 국내 최초 산업용 양자컴퓨터 개발
정 대표는 고려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이후 양자역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공학과 양자역학의 공통 분야인 양자컴퓨터와 양자보안을 연구했다. 그리고 지난 2014년 정보보안업체인 노르마에 대표로 합류했다.
노르마는 사업 초기 양자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했다. 이후에는 실제 고객 기업들이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양자컴퓨터 환경에서 구현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대표 제품으로는 큐플랫폼(Q Platform)과 큐리온(Qrion)이 있다.
큐플랫폼은 양자역학의 원리를 활용해 복잡한 계산을 가능하게 하는 혁신 플랫폼이다. 사용자 친화적인 개발 환경과 강력한 시뮬레이션 도구를 제공해 양자 컴퓨팅의 접근성과 효율성을 대폭 향상 시킨다.
큐리온은 노르마가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한 산업용 양자컴퓨터로 초전도 방식의 양자연산장치(QPU)가 적용된다. 최신 기술의 이점을 빠르게 통합해 지속적인 성능 개선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일관된 성능으로 안정적이고 정확한 계산을 제공한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투자 유치…하반기 IPO 박차
해외에서도 노르마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홀딩스(Temasek Holdings)의 자회사인 버텍스 벤처스(Vertex Ventures)가 지난 7월 노르마에 투자를 결정했다.
이번 투자 유치는 상장 전 프리 IPO(기업공개) 차원으로 노르마는 올초 IPO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대신 올 하반기 IPO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내년 증시 입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업가치 목표액은 1000억원이다.
노르마는 해외 기업 및 연구기관들과도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세계적인 양자컴퓨터 측정장비 기업인 취리히인스트루먼트(Zurich Instruments)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양사는 노르마의 Q플랫폼과 취리히인스트루먼트의 QCCS(Quantum Computing Control System) 간 인터페이스를 개발할 계획이다.
정 대표는 “양자컴퓨터는 결국 반도체 기술을 갖고 있는 쪽에서 상업화 시키고 더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우리나라는 반도체 강국이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이 많을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양자컴퓨터, 우리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발전할 것”
최근에는 미국 양자컴퓨터 업체 아이온큐의 주가가 급등하며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정 대표는 양자컴퓨터의 AI와 GPU 대체 가능성을 언급했다. LLM과 챗GPT의 전력 소모량이 늘어나면서 양자컴퓨터가 대체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올해 미국의 전체 전력 소모량은 작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그만큼 GPU 장비가 쓰는 전력 규모가 크다는 방증이다. 이 때문에 SMR(소형모듈원전)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정 대표는 “양자컴퓨터는 자연 파괴의 우려도 없기 때문에 더욱 기대를 받고 있다”면서 “매트릭스 연산 부분은 양자컴퓨터가 모두 대체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그 발전 속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를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