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빗소리·회생제동까지 지운 르노 필랑트…A/S 불안도 걷어낸다

250마력 하이브리드의 부드러운 전환·준대형 세단급 정숙성 인상적
3년 무상관리·12가지 무상점검·24시간 키드롭…부품값 오해 해소 나선 르노

[더구루=나신혜 기자] 르노코리아가 새로운 플래그십 크로스오버 ‘필랑트’를 앞세워 국내 준대형차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필랑트는 지난 1월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된 르노코리아 ‘오로라 프로젝트’의 두 번째 모델이다.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특징을 결합한 E세그먼트 크로스오버 차량이다. 프리미엄한 실내와 넉넉한 공간을 원하는 고객을 겨냥했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에서 경기 고양시 르노코리아 일산백석점까지 필랑트를 운전했다. 이날 많은 비가 쏟아져 노면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오히려 필랑트가 강조하는 정숙성과 승차감을 확인하기에는 적합한 환경이었다.

 

첫인상은 ‘놀랄 만큼 부드럽다’는 것이었다. 하이브리드차를 운전할 때 흔히 느껴지는 회생제동의 이질감이 거의 없었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거나 브레이크를 밟을 때 차가 갑작스럽게 붙잡히는 느낌도 크지 않았다.

 

엔진과 전기모터 사이의 전환도 운전자가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필랑트에는 1.5리터(ℓ) 가솔린 터보 엔진과 듀얼 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E-Tech 250’ 시스템이 적용됐다. 계기판을 통해 구동 상태를 확인하지 않는다면 현재 엔진이 작동 중인지 전기모터로 주행 중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출력 자체를 과시하기보다는 일상 주행에서 운전자와 탑승자가 편안하게 이동하는 데 초점을 맞춘 세팅에 가까웠다.

 

주파수 감응형 댐퍼가 적용된 서스펜션은 빗길의 불규칙한 노면을 부드럽게 걸러냈다. 필랑트는 전장 4915밀리미터(㎜), 전폭 1890㎜, 축거 2820㎜의 차체에 적용된 주파수 감응형 댐퍼 덕에 차체가 출렁이거나 충격 뒤에 불필요한 움직임이 이어지기보다는 노면을 안정적으로 누르며 지나갔다. 속도를 높여도 차체가 가볍게 떠오르는 느낌이 적어 플래그십 패밀리카에 어울리는 안정감을 전달했다.

◇쏟아지는 비에도 조용한 실내…파노라마 루프 우려 지웠다

 

정숙성은 이번 시승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필랑트에는 1.1제곱미터(㎡) 크기의 파노라마 글래스 루프가 적용됐다. 넓은 유리 면적 때문에 빗소리나 외부 소음이 크게 유입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실제 실내에서는 쏟아지는 빗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주행 중 창문을 잠시 내리자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와 노면 소음이 예상보다 훨씬 커 오히려 놀랄 정도였다. 창문을 닫은 뒤에는 소음이 빠르게 차단됐다. 차음 설계와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이 함께 작동하며 준대형 세단에 가까운 정숙성을 만든다는 인상을 받았다.

 

첨단 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은 조향 개입이 비교적 분명한 편이었다. 차로 중앙 유지 기능을 작동하면 스티어링 휠이 차선을 따라 움직이려는 힘이 손끝에 전달됐다. 운전자가 자유롭게 조작하는 것을 선호한다면 다소 적극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

 

다만 빗길에서는 차량이 차로 중앙을 꾸준히 유지한다는 신뢰감을 줬다. 시스템의 개입을 방해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차량이 주변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는 신호로 느끼는 운전자에게는 오히려 안정적인 설정이다. 이 부분은 운전자 성향에 따라 선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각진 SUV와 다른 유려함…보석을 박은 듯한 후면부

 

필랑트의 가장 강력한 구매 요인은 디자인이다. 최근 SUV가 직선과 각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필랑트는 상대적으로 유려한 선을 사용했다. 전면부의 일루미네이티드 로장주 로고와 그릴 라이팅에 불이 들어오면 차체의 곡선과 헤드램프가 하나로 이어지며 존재감이 더욱 뚜렷해진다.

 

후면부도 개성이 강하다. 좌우로 펼쳐진 리어램프는 빛을 밝히면 마치 보석을 박아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필기체로 표현한 필랑트 차명도 일반적인 SUV의 굵고 직선적인 레터링과 달리 한층 세련된 분위기를 만든다.

 

실내는 ‘프리미엄 테크 라운지’라는 콘셉트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아이코닉 사양의 경우 12.3인치 디스플레이가 운전석 계기판부터 센터페시아, 조수석까지 이어져 시각적인 만족감이 높다. 조수석 디스플레이에서는 게임과 동영상, 음악 등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별도 헤드셋을 연결할 수 있어 자녀와 장거리 이동이 잦은 가족에게도 유용해 보였다.

 

운전석에서는 조수석 화면의 콘텐츠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동승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동시에 운전자의 시선이 화면으로 분산되는 것을 막는 구성이다. 단순히 화면 개수를 늘린 것이 아니라 동승자의 즐길 거리와 주행 안전을 함께 고려했다는 인상을 줬다.

 

헤드레스트와 등받이가 하나로 이어진 라운지 시트는 고급 수입차에서 볼 법한 형태다. 몸을 감싸는 구조로 설계돼 착좌감도 편안했다. 뒷좌석 공간은 압도적으로 넓지는 않지만 성인과 자녀가 함께 이용하는 패밀리카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쿠페처럼 뒤로 갈수록 천장이 낮아지는 디자인 때문에 체격이 큰 탑승자는 헤드룸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 키 167센티미터(㎝)인 기자가 앉았을 때 머리 위 공간은 충분했지만, 구매 전 뒷좌석에 직접 앉아 확인할 필요는 있다.

◇“르노 부품은 비싸다”…필랑트부터 인식 바꿀까

 

르노코리아는 이날 시승뿐 아니라 필랑트 구매 이후의 애프터서비스 체계를 함께 공개했다. 수입 부품 의존도가 높았던 과거 르노 차량은 부품 가격이 비싸고 서비스센터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었다. 르노코리아 역시 이 같은 부정적 인식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르노코리아는 현재 대부분의 고객이 약 20분 이내에 서비스 거점을 방문할 수 있는 전국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으며 온라인 예약 후 평균 2일 안에 정비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필요한 부품을 다음 날 공급하는 비율은 약 93%이며, 즉시 공급하기 어려운 부품은 긴급 배송과 지역 부품 대리점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필랑트는 국내 생산·조달을 확대하면서 일부 부품 가격이 이전 르노 차량보다 낮아졌다는 설명이다. 르노코리아 정성구 애프터세일즈 담당 상무는 “과거 프랑스산 부품을 사용하면서 가격이 높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랑 콜레오스와 필랑트 이후에는 경쟁력 있는 가격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랑트 구매 고객에게 기본으로 제공되는 ‘R:assure(알어슈어)’도 유지비 부담을 낮추는 요소다. 최초 등록일부터 3년 또는 주행거리 4만5000㎞까지 △프리미엄 점검 3회 △엔진오일 세트 3회 △에어컨 필터 3회 △브레이크 오일 1회 교체가 무상으로 제공된다. 조건을 충족하면 중고차 가격 보장과 사고 발생 시 신차 교환 프로그램도 이용할 수 있다.

 

회사 측은 알어슈어를 적용할 경우 경쟁 차종과 비교해 5년 유지비를 약 37%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비용은 주행거리와 정비 항목, 비교 차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구매 직후 3년간 주요 소모품 비용을 미리 줄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모든 입고 차량에 12가지 무상점검…퇴근 후에도 키 맡긴다

 

시승 도착지는 르노코리아 서비스코너 일산백석점이었다. 이곳은 인천 동부점와 김포 양곡점 등 3개 르노코리아 서비스 사업장을 운영하는 윤석천 대표가 지난 2024년 문을 연 지점으로, 고객 서비스 우수업체로 선정됐다.

 

정비소라는 딱딱한 이미지와 달리 시설은 전체적으로 깨끗했고 대기 공간도 아늑하게 구성돼 있었다. 주변에 텃밭과 자연 공간도 마련돼 있어 정비를 기다리는 고객이 잠시 바깥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텃밭에서 수확한 작물을 고객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입고되는 모든 차량에 제공하는 12가지 무상점검이었다. △전구류 △엔진·변속기·브레이크 오일 △냉각수와 워셔액 △타이어와 브레이크 패드 마모 상태 △하체 △배터리 △구동벨트 등을 약 15분 동안 점검한다. 다른 정비업체에서 비용을 받는 항목까지 기본 서비스로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점검 과정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사진과 영상을 촬영해 고객에게 전달한다. 수리 전에는 부품값과 공임을 각각 안내하고 고객이 동의한 뒤 작업을 시작한다. 엔진오일 교체처럼 정형화된 작업은 마이르노 앱에 공개된 가격과 실제 청구 가격이 원칙적으로 같다. 견적서에도 부품과 공임이 세부적으로 표시돼 추가 비용에 대한 불안을 줄였다.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키드롭 서비스도 실용적이었다. 고객이 앱으로 예약한 뒤 출근 전이나 퇴근 후 차량을 주차하고 보관함에 키를 넣으면 운영시간에 맞춰 정비가 진행된다. 서비스센터 운영시간에 맞춰 휴가를 내거나 일정을 조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체감 편의성이 높다.

 

사고 수리가 필요한 경우에는 동인천정비사업소와 연계해 차량을 직접 이동한다. 고객이 다른 센터를 다시 방문할 필요가 없고 센터 간 차량 이동에 별도 비용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필랑트에는 고객 동의를 전제로 차량의 고장 정보를 확인하는 원격 진단 체계도 적용해 서비스센터 방문 전 필요한 조치를 안내할 계획이다.

 

◇좋은 차만큼 중요한 것은 ‘출고 이후’

 

필랑트는 짧은 빗길 시승만으로도 상품의 방향이 명확하게 드러난 차였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전환과 회생제동을 최대한 감추고, 부드러운 승차감과 높은 정숙성, 감각적인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웠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ADAS와 뒤로 낮아지는 루프는 취향과 체격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지만 패밀리카와 프리미엄 크로스오버 사이에서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한다.

 

애프터서비스 역시 필랑트의 상품성에 포함하려는 르노코리아의 의지가 읽혔다. 3년 무상관리와 정찰제 정비, 무상점검, 키드롭, 보이는 점검은 고객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일부 부품의 국내 생산을 통해 가격을 낮췄다는 점도 기존 르노 차량에 대한 불안을 줄일 수 있는 변화다.

 

다만 이번에 확인한 일산백석점은 르노코리아가 우수업체로 선정한 사업장이다. 이곳의 시설과 서비스 수준이 전국 모든 서비스 거점에서 동일하게 제공되는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부품 가격과 공급 기간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역시 회사의 설명보다 실제 정비 사례가 쌓여야 바뀔 수 있다.

 

결국 필랑트의 경쟁력은 차를 판매하는 순간보다 출고 이후에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필랑트가 보여준 부드러운 주행 경험을 정비 과정에서도 이어갈 수 있다면, 르노코리아가 강조하는 ‘차량 경험과 브랜드 충성도의 선순환’도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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