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창원)=김예지 기자] "이번 국산 항공엔진 초도시제 완성과 지상시험의 착수는 항공엔진 기술 확보를 향한 진정한 시작입니다."
6일 방문한 경남 창원시 성산구에 위치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1사업장. 국내 독자 기술로 완성된 항공엔진의 첫 지상시험 착수를 선언하는 현장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항공기의 '심장'으로 불리는 항공엔진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전 세계에서 극소수 선진국만이 독점해 온 이 철옹성에 대한민국이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국방과학연구소(ADD)와 공동 개발한 무인기용 엔진 2종의 초도시제를 전격 공개했다. 수천 시간 이상 사용 가능한 ‘장수명 항공엔진’의 시제 완성은 국내 방산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찾은 창원1사업장에는 대한민국 영공을 책임지는 동력을 생산한다는 자부심과 기술 자립을 향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 "엔진 없으면 무인기도 없다"…마지막 퍼즐 완성
정문을 통과해 들어선 창원1사업장에서는 정형동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1사업장장의 환영사와 커뮤니케이션실의 브리핑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미디어 행사의 막이 올랐다. 단순히 엔진을 조립하는 공장이 아니라 대한민국 항공우주 산업의 동력을 책임지는 곳이라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이어진 국산 항공엔진 국산화 전략 발표에서 김종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항공사업부 첨단엔진사업팀장은 "세계 항공엔진 시장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소수 국가만 기술을 보유한 대표적인 기술 장벽 산업"이라며 "미국의 국제무기거래규정(ITAR) 등 엄격한 수출 규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독자적인 엔진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인 두 기의 엔진 시제는 창원1사업장 내 주황색 외관이 돋보이는 조립공장에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피탐 무인편대기용 ‘5500파운드(lbf) 터보팬 엔진’과 중고도무인기(MUAV)용 ‘1400마력 터보프롭 엔진’이다.
김종호 팀장은 특히 "5500파운드급 엔진 개발이 성공하지 못하면 사실상 미래 무인기 개발도 성공할 수 없다"며 "유무인 복합체계와 인공지능(AI) 기반 미래 전장의 핵심 기술적 토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간 미사일 등에 사용되는 단수명 엔진은 국산화에 성공했으나, 대형 항공기에 들어가는 장수명 엔진의 시제를 뽑아낸 것은 이번이 최초다. 김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항공사업부장은 “1979년 첫 발을 뗀 이후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1만 대 이상의 엔진을 생산하며 전주기 역량을 쌓아왔다”며 “대한민국 무인 항공 체계의 심장을 만드는 기술적 토대를 다지고 있다”고 밝혔다.
◇ '빨간불 켜지면 처음부터 다시'…마이크로미터와의 사투
이후 진행된 사업장 투어는 본관 견학관을 시작으로 △스마트엔진조립공장 △엔진테스트셀(시운전실) △스마트엔진가공공장 순으로 이어졌다.
견학관부터 시운전실까지 전반부 안내를 맡은 김승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1사업장 생산기술팀장은 "이곳 창원1사업장에서 근무하는 1100여 명의 임직원이 우리 군의 영공 방위와 글로벌 민항기 부품 생산을 책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먼저 향한 '스마트엔진조립공장'은 KF-21에 탑재되는 F414 엔진과 FA-50용 F404 엔진 조립라인이 한눈에 들어왔다. 작업자들은 종이 작업지시서 대신 대형 모니터와 3D 모델을 보며 조립을 진행하고 있었다. △부품 위치 △생산 진행 상황 △재고 현황까지 실시간으로 관리되는 디지털 생산 시스템이 구축돼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디지털 토크렌치였다. 볼트를 조이는 순간 화면에는 초록색과 빨간색이 즉시 표시됐다. 규정된 힘으로 정확하게 조였을 때만 초록불이 들어오고, 기준을 벗어나면 빨간불이 켜졌다. 빨간불이 뜨는 순간 작업은 인정되지 않으며 작업자는 처음부터 조립을 다시 해야 한다. 일부 부품에 따라 1마이크로미터 수준의 초정밀도가 요구되는 만큼, 사람의 감각이 아니라 데이터가 품질을 관리하며 공정 누락이나 0.4mm 수준의 미세한 결함까지 실시간으로 검출·제어하는 스마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 1500℃ 극한 환경 견디는 공간…사람이 퇴근해도 멈추지 않는 공장
이번 투어의 백미는 단연 엔진테스트셀(시운전실)이었다. 두꺼운 방음문을 지나자 U자 형태로 설계된 거대한 시험시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부에서는 최고 1500℃의 극한 환경을 구현해 실제 비행 환경과 유사한 조건에서 엔진 성능을 검증한다.
현재 창원1사업장에는 총 9개의 시험셀이 운영 중이다. 이날 확인한 제트셀은 최대 5만파운드급 엔진까지 시험할 수 있으며, 가동 시 분당 약 350리터의 연료가 투입되는 거대한 인프라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곳 옆으로 내후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무인기 전용 시험시설을 추가 구축하고 있다.
버스로 5분가량 이동해 찾은 민수용 스마트엔진가공공장은 적막감이 감돌 정도로 고도화된 무인 시스템을 자랑했다. 오렌지색 무인운반로봇(AGV)이 스마트 태그를 장착한 부품들을 실어 나르고, 공장 내부 온도는 기준치를 벗어나면 즉시 경고를 주는 스마트 시스템이 통제하고 있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박민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1사업장 엔진생산팀 차장은 "작업자가 출근해 가공 장비에 소재만 세팅하면, 작업자가 퇴근한 뒤에도 로봇이 공구를 자동으로 교체하며 무인으로 생산을 계속한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생산된 일체형 블레이드 디스크(IBR) 등 초정밀 핵심 부품은 보잉 737 맥스와 에어버스 A320neo 등 글로벌 베스트셀러 민항기 엔진에 탑재된다.
◇ 5조 5000억원 대장정…오는 2050년 68조원 경제 효과 기대
기체와 비행제어, 임무장비 분야에 이어 마지막 퍼즐이었던 '엔진' 국산화가 본격 궤도에 오르면서 대형 첨단항공엔진 개발 사업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방사청 △산업부 △우주항공청 등이 참여하는 다부처 과제로 기획된 첨단항공엔진(2만 4000파운드급) 개발 사업은 현재 과기부의 사업 추진 적정성 검토(옛 예비타당성조사)를 밟고 있다. 다음달부터 본격적인 심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총 사업비만 약 5조 5000억원이 투입되는 14년간의 대장정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역시 이에 발맞춰 지난 10년간 약 2조원을 독자적으로 투자해 왔으며, 연구개발(R&D) 인력도 현재 410명까지 대폭 확충했다.
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오는 2050년까지 약 68조원의 생산유발효과와 10만 명 이상의 고용유발효과가 기대된다. 엔진 원가의 대부분이 중소 협력업체들의 부품 가공과 소재 단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독자 엔진 개발은 곧 국내 항공산업 생태계 전체를 키우는 마중물이 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무인기 엔진 시제 성공을 발판 삼아 향후 1만 파운드급을 거쳐 차세대 전투기, 중형 수송기, 해군 함정 및 발전용 엔진까지 아우르는 파생형 엔진 라인업을 구축, 오는 2060년대까지 최소 1500대 이상의 엔진 수요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창원1사업장에서 시작된 장수명 항공엔진 개발은 대한민국 항공엔진 자립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