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김현수 기자]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고개를 숙였다. ‘탱크데이’ 논란이 불거진 지 8일 만이다. 정 회장은 5·18 유족과 광주 시민, 국민들에게 사과하면서 철저한 진상 조사, 내부 시스템 전면 재정비를 약속했다.
정용진 회장은 26일 서울 강남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 박종철 열사 유가족, 광주 시민, 그리고 국민들께 신세계그룹 회장으로서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 드린다"며 직접 용서를 구했다.
이날 정 회장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국민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를 드린 것은 그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면서 "저를 포함한 신세계그룹 구성원 모두 우리 사회의 역사와 희생을 기억하고, 늘 국민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서 구체적인 방향도 제시했다. 정 회장은 "내부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 체계를 근본부터 다시 점검하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준도 더욱 높이겠다"며 "오늘의 사과를 끝이 아닌 시작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 국민 여러분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도록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회장 사과에 이어 그룹 경영진들이 조사 현황과 대책 발표가 이어졌다. 전상진 신세계그룹 경영총괄 부사장은 "사건 발생 직후인 19일부터 일주일간 이번 마케팅을 진행한 스타벅스코리아 임직원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내부 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조사의 핵심은 고의성 여부였다. 전 부사장은 "해당 직원들과 임원진이 특정 목적을 갖고 이번 마케팅을 기획했는지 여부가 핵심 조사 사항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조사 결과 해당 임직원들이 고의성을 가지고 해당 마케팅을 기획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는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 부사장은 법적 절차적 한계를 이유로 들었다. "탱크데이 네이밍을 제안했던 직원 등 커머스팀 팀원 3명이 휴대폰 제출을 거부했고, 그 영향으로 이번 마케팅과 관련된 이들 사이의 대화와 업무 처리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던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다. 사내 메신저 대화 기록이 회사 서버에 일주일만 저장되는 탓에 최초 기획 단계 대화도 복원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마케팅을 담당한 직원들은 고의성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전 부사장은 "해당 직원들은 기존 텀블러 홍보 문구였던 '가방의 속'과 라임을 맞추는 데 급급했다, AI에 물어봤다, 5·18은 생각조차 못했다며 고의성 여부를 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재 과정의 총체적 부실도 드러났다. 전 부사장은 "이번 마케팅은 이커머스팀에서 제안한 것으로 팀장·담당·본부장·대표이사 총 4단계 보고 절차를 거쳐 진행됐다"며 "이 과정에서 그 누구도 '5월 18일에 탱크데이는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지적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합의자 7명 중 일부는 해당 마케팅 디자인 시안이 담긴 메일의 첨부파일조차 열지 않고 관행적으로 승인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마케팅의 즉시성을 우선시하면서 과거 진행되던 법무팀 검증 프로세스도 생략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온라인에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탱크 텀블러 용량 503ml가 특정인의 수인번호를 암시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17온스를 밀리리터로 환산한 것으로, 해당 제품은 2023년부터 호주·태국 등에서도 동일 용량으로 판매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4월 16일 미니탱크 텀블러 출시일이 세월호 참사일을 겨냥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스타벅스코리아는 최초 4월 21일을 제안했으나 행사 업체 측에서 4월 16일로 확정 통보해온 것"이라며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명확히 했다.
관련자 전원에 대한 엄중 조치도 예고했다. 전 부사장은 "경찰 조사에서 5·18을 폄훼하려는 의도가 입증될 경우 해당 임직원은 즉각 해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그룹 최고 경영진 그 누구라도 이번 사안과 관련한 부적절한 개입이나 그 의도가 확인될 경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그룹은 향후 정 회장이 직접 광주를 찾아 관계자들에게 사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사태 진상 파악과 해결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번 논란은 스타벅스코리아가 지난 18일 텀블러 판촉 행사에서 '탱크데이', '책상에 탁' 등의 문구를 사용하면서 불거졌다. '탱크'라는 표현이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 장갑차를 연상시키고,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는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 발표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직접 강하게 질타하는 등 거센 비판이 일면서 스타벅스 불매 운동이 확산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