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화성)=정예린 기자] 노란색 산업용 로봇 수십대가 회색 차체 패널을 집어 들고 쉴 새 없이 용접을 이어갔다. 바닥에서는 무인운반차(AGV)가 부품을 싣고 생산라인 사이를 오갔다. 차체 용접을 100% 자동화한 기아의 첫 목적기반차량(PBV) 전용 공장 '화성 EVO 플랜트 이스트(EVO Plant East)'에서는 사람보다 로봇의 움직임이 더 분주했다.
지난 8일 찾은 경기 화성시 우정읍 기사 오토랜드 화성의 EVO 플랜트 이스트는 PV5를 양산하고 있는 기아의 PBV 전용 생산기지다. 기아는 이날 'PBV 생산 허브 테크 데이'를 열고 차체·조립 공장을 공개한 뒤 다차종 유연 생산과 자동화, 데이터 기반 품질관리, 컨버전 사업 운영 체계를 소개했다.
작년 8월 가동을 시작한 EVO 플랜트 이스트는 9만9976㎡로의 부지 면적에 들어섰다. 연간 최대 10만대, 시간당 29대의 생산능력을 갖췄다. 패신저와 카고를 비롯해 샤시캡, 교통약자용 차량(WAV) 등 다양한 PV5를 생산한다. 차체·도장·조립 공장의 자동화율은 각각 83%, 91%, 27%다. 기존 화성 공장보다 약 9% 높은 수준이다.
소득영 기아 오토랜드 화성 공장장(전무)은 "PBV의 가치는 차량 자체의 혁신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며 "다양한 요구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생산 시스템과 고객 목적에 맞춰 차량의 활용성을 넓히는 컨버전 역량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노란 로봇 팔 사이로 PV5 차체가 '척척'…180여개 사양 자동 구분
차체 공장에 들어서자 수십대의 노란 산업용 로봇이 회색 패널을 들어 올리고 용접을 이어가고 있었다. 공장 상부가 생산·물류 설비로 빼곡하게 막혀 있지 않아 시야도 비교적 탁 트였다. 부품 이동 공간을 지하와 상층부 등에 분산한 덕분이다.
한쪽에서는 2대의 대형 로봇이 차체 앞뒤를 나눠 잡은 뒤 동시에 들어 올렸다. 각각 최대 600kg을 들 수 있는 로봇이 움직임을 맞춰 하나의 차체를 운반하는 '로봇 협조제어 이송 시스템'이다. 차체 길이가 달라져도 두 로봇의 위치와 움직임을 조절해 같은 설비에서 옮길 수 있다.
바닥에서는 저상형 AGV가 끊임없이 오갔다. 취재진이 이동 경로에 서자 곧바로 멈춘 뒤 "장애물을 감지하였습니다"라는 안내음을 냈다. 사람이 길을 비키자 다시 출발해 부품을 싣고 생산라인 안쪽으로 향했다. 차체와 도어·테일게이트 등 주요 부품 공급에도 AGV가 투입돼 차체 공장 부품 핸들링 작업의 약 80%가 자동화됐다.
차체 용접은 사람이 직접 하지 않는다. 자동화율이 100%다. 하지만 라인 끝으로 가자 작업자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메탈 피니시 구간에서는 완성된 차체를 직접 살펴보고 표면과 조립 상태를 확인한 뒤 필요한 부분을 손봤다.
생산하는 PV5의 사양이 많아지면서 부품 공급 방식도 달라졌다. 차체공장에서 구분하는 사양만 180여개가 넘는다. 라인 한쪽 자동창고에 다양한 패널을 보관하고 데이터 매트릭스로 사양을 식별해 생산 중인 차량에 맞는 부품을 공급한다. 작업자가 패널을 육안으로 구분해 투입하는 과정을 줄인 것이다.
◇ 조립공장 들어서니 사람이 늘었다…힘든 작업은 로봇 몫
조립공장에 들어서자 풍경이 달라졌다. 차체공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작업자들이 차량 안팎에 붙어 각종 부품을 조립하고 있었다. 자동화율도 27%로 차체공장보다 크게 낮다.
현장 관계자는 그 이유로 부품의 특성을 꼽았다. 조립공정에서는 금속처럼 형태가 일정한 부품뿐 아니라 휘고 접히는 소재까지 600여개의 부품을 다룬다. 로봇이 잡고 위치를 맞추기 까다로운 부품이 많은 만큼 사람의 손을 모두 대체하기보다는 작업 부담이 큰 공정부터 자동화하는 쪽을 택했다.
검은색 PV5 후드를 장착하는 구간에서는 3대의 로봇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첫 번째 로봇이 후드를 들어 위치를 맞추자 양쪽의 로봇이 볼트 4개를 나눠 체결했다. PV5 후드는 일반 스틸 대신 검은색 복합섬유 소재를 사용해 별도 도장 없이 조립공장에서 곧바로 장착한다.
도어 역시 로봇이 차체에서 떼어냈다. 비전카메라가 프런트 도어의 위치를 확인하면 로봇이 힌지 볼트를 풀어 분리한다. 차량 내부를 조립하는 작업자에게 공간을 확보해주기 위해서다. 떼어낸 도어는 별도 라인에서 글라스와 트림 등을 붙인 뒤 다시 차체에 장착된다.
무게가 약 65kg에 달하는 크래쉬패드는 3차원(3D) 비전으로 위치를 확인한 로봇이 차량 안으로 넣고 볼트까지 체결한다. 헤드라이닝도 프런트와 리어는 로봇이 맡았다. 반면 와이어링과 에어덕트 등을 연결해야 하는 센터 부분은 작업자가 직접 조립한다.
고전압 배터리 체결 공정도 로봇이 작업을 맡는다. 배터리와 같은 하부 부품은 체결 토크가 높아 작업 소음과 신체 부담이 큰데 자동 체결 후 토크값과 정상 작업 여부까지 데이터로 남긴다.
엠블럼 부착 공정에서는 차량이 들어올 때마다 로봇의 작업이 달라진다. 생산 정보를 읽어 패신저·카고·샤시캡 등을 구별하고 후드와 테일게이트에 붙일 기아·PV5 엠블럼과 세부 모델별 엠블럼을 자동으로 선택했다. 비전 카메라가 부착 위치를 잡으면 로봇이 이형지를 제거한 뒤 정확한 지점에 엠블럼을 붙인다.
취재 도중 한 차량에서 비전 시스템이 위치를 제대로 읽지 못하자 경고음이 울렸다. 작업자가 다가와 설비 상태를 확인하고 ‘재시도' 버튼을 누르자 로봇이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자동화 설비가 작업자를 완전히 대체했다기보다 반복·고부하 작업을 넘겨받고 사람은 설비와 품질을 관리하는 모습에 가까웠다.
고다은 매니저는 “조립 공정은 소프트하고 플렉시블한 부품까지 다뤄 아직 작업자가 직접 핸들링하는 작업이 있다”며 “EVO 플랜트 이스트에서는 루프 패드와 헤드라이닝 등에도 투입·장착 자동화를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 차량 들어오자 3D 카메라가 '쓱'…단차 ±0.2㎜ 측정
완성차 검사 구간에서는 차량 위쪽의 3D 비전 카메라가 차체 전체를 훑는다. 카메라가 차량 좌표를 잡으면 로봇이 실제 위치에 맞춰 측정 지점을 보정한다. 펜더와 도어 등 좌우 각각 21개 지점의 간격과 단차를 ±0.2mm 수준까지 측정한다.
외관 비전 검사에서는 18대의 카메라가 아웃사이드 미러와 펜더, 도어 가니시·핸들 등 24개 부품을 살핀다. 해당 차량과 다른 사양의 부품이 들어갔는지, 부품이 빠지지는 않았는지 판별한다. 헤드램프 에이밍 공정에서는 로봇이 후드를 열고 광도와 광축을 조정했으며 휠 얼라인먼트 검사도 함께 진행됐다.
검사 결과만 따로 저장하는 것은 아니다. 차체 패널과 용접부터 주요 볼트 체결, 완성차 검사까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값을 차량 한 대의 이력으로 묶는다. 차량에 부착한 초광대역(UWB) 기반 스마트 태그는 생산정보와 공구 위치를 대조해 해당 차량에 맞는 설비가 연결됐을 때만 작업이 이뤄지도록 한다.
◇ PV7 만드는 '웨스트'에는 AI·AMR 더 확대
이스트 공장 인근에서는 두 번째 PBV 전용 생산시설인 'EVO 플랜트 웨스트(EVO Plant West)' 공사가 진행 중이다. 내년 6월 준공 예정으로 13만6671㎡ 규모에 연간 1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대형 전동화 PBV인 PV7을 생산한다.
웨스트에서는 이스트에서 먼저 검증한 설비를 토대로 자동화 범위를 더 넓힌다. 차체 부품 상·하차와 인라인 물류를 자동화하고 조립 부품 공급에는 AMR을 투입한다. 루프 안테나와 쿼터 글라스, 플로어 콘솔 등 높은 위치에서 작업하거나 무거운 부품을 다루는 공정에도 자동화 설비를 확대한다. AI는 외관 비전 검사 알고리즘과 차체 패널별 용접 조건 최적화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성시영 책임매니저는 "웨스트에 신규 적용한 기술을 고도화해 양산성을 확보하면 이스트에도 확대할 수 있으며, 이스트 조립공장의 자동화율이 20% 후반대인 데 비해 웨스트는 30%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해당 기술은 PBV뿐 아니라 기존 양산 공장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