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루=김예지 기자] 필리핀 막탄 세부 국제공항에 장기간 방치되며 현지 경관 훼손과 안전 우려를 낳았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결국 철거 수순을 밟게 됐다. 사고 발생 후 4년 가까이 공항 한편에 남겨져 '흉물'로 전락했던 A330-300 사고 기체가 원형을 잃은 채 절단, 해체돼 스크랩(공업) 처리 수순을 밟으며 공항에서 곧 자취를 감출 전망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필리핀 세부 공항 내 방치됐던 대한항공 에어버스 A330-300 사고 기체의 해체·철거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미 약 2~3개월 전부터 현지에서 기체를 여러 조각으로 절단한 뒤 중장비를 이용해 순차적으로 반출하는 작업이 시작돼 현재는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체는 대한항공이 21세기 들어 발생한 첫 여객기 전손(동체 완전 파손) 사고 기체였다.
해당 기체(KE631편)는 지난 2022년 10월 23일 악천후 속에서 세부 공항 착륙을 시도하다 활주로를 이탈(오버런)하는 사고를 냈다. 당시 세 차례 착륙 시도와 복행(재상승)을 거쳐 네 번째 접근 끝에 '메이데이'를 선언하고 비상착륙했으나, 활주로를 235m 벗어나 로컬라이저(방위각 제공 장치) 등 공항 시설물을 충돌한 뒤 정지했다.
대한민국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와 필리핀 당국의 조사 결과, 2차 접근 당시 강한 하강기류 속 급격한 하강으로 우측 랜딩기어가 활주로 경계의 15cm 높이 시멘트 단차에 충돌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 충돌로 유압배관과 전선이 파손되어 △브레이크 △스포일러 △역추진장치 등 3대 감속 시스템이 모두 마비됐다. 최종 보고서에는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 복행 판단이 단 1초만 더 빨랐어도 지면 충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담겼다.
당시 탑승객 162명과 승무원 11명 등 173명 전원이 비상 슬라이드를 통해 긴급 탈출해 대형 인명 피해는 면했으나, 기체 하부와 랜딩기어가 크게 손상되어 수리 불가능한 '전손' 판정을 받았다. 사조위가 공개한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사고 기체는 정비 규정을 준수해 관리되어 항공사 측 정비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오히려 제조사인 에어버스의 매뉴얼 미비 및 부품 결함이 지적되기도 했다.
사고 직후 항공기는 활주로 운영 정상화를 위해 녹지대로 이동됐으나, 세부공항 내 대형 기체를 견인할 중장비가 부족했던 데다 현지 관계기관과의 철거·반출 절차 협의가 장기간 난항을 겪으면서 수년간 방치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대한항공의 하늘색 도장과 로고는 초록색 페인트로 덧칠해졌다. 최근 현지 당국과의 협의가 마무리되어 본격적인 해체·반출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공항 현장 수습은 일단락될 전망이다.
다만 기체 철거와 별개로 사고 여파로 인한 사법적 리스크는 지속되고 있다. 미국 텍사스 북부 지방법원이 미국 시민권자 승객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대한항공 측의 기각 요청을 거부하고 관할권을 인정함에 따라, 무리한 착륙 시도 및 안전 관리 소홀 여부를 둘러싼 법적 공방은 미국 법원에서 진행 중이다.
